현대차 지배구조 중심 돌고 돌아 다시 '현대모비스'로
입력 2018.03.29 11:30|수정 2018.03.29 13:51
    비용 지출 최소화 위해 한 때 글로비스 중심 시나리오 많이 나와
    초기 시나리오로 다시 회구…”사회 분위기 바뀌어 직구 선택”
    •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세 가지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 그룹 핵심 3사 간의 순환출자 ▲현대글로비스에 집중된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핵심 3사에 대한 낮은 지배력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모비스의 6.96%, 현대차의 5.17%만 보유하면서도 순환출자 구조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승계 받아야 하는 정의선 부회장은 기아차에 대한 직접 지분 1.74%와 글로비스를 통한 모비스 지분 0.67%를 제외하고는 핵심 3사에 대한 지분율이 대단히 미약하다는 게 딜레마다.

    • ◇ 2014년 이후 시나리오 우후죽순…모비스 중심 다수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현대엔지니어링의 현대엠코 흡수합병을 시작으로 현대위아의 현대메티아·현대위스코 흡수합병, 현대오토에버의 현대씨앤아이 흡수합병, 이노션 지분 매각이 진행됐다. 당시 논란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시나리오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졌다.

      주로 정의선 부회장이 사실상 지주회사가 될 가능성이 큰 모비스의 지분을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글로비스는 이를 위한 지렛대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 16.88%를 인수해 그룹 지배권을 확보하고 현대제철이 보유한 모비스 지분 5.66%는 모비스가 자기주식으로 취득하거나 매각해 순환출자 구조까지 해소하는 방식이 언급됐다. 글로비스가 기아차 보유 모비스 지분을 인수하고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제철 보유 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도 거론됐다. 정의선 부회장의 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의 모비스 지분을 스와프하는 시나리오도 언급됐다. 하지만 각각 인수자금 부담, 주주 반발, 그룹 지배력 약화라는 단점 들을 갖고 있다.

      또 현대차의 인적분할을 통한 현대차홀딩스 설립하거나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 3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 후 3개 회사의 투자부문을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은 해가 바뀌자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5년 1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글로비스 지분(13.4%)를 블록딜로 매각했고 잔여지분 30.0%에 대해서도 2년 간 매각할 수 없는 보호예수가 설정됐다. 2015년말 일몰이 예상됐던 현물출자 과세이연이 2018년말까지 연장된 것도 한 몫 했다.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에 2014년 한 해 동안 37% 상승한 글로비스 주가도 이후 2016년말까지 50% 하락했다.

      ◇ 2017년부터 글로비스 주목 더 높아져…"쉽고 비용 절감"

      다시 기대감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7년부터다. 삼성그룹의 선제적 변화 가능성이 부각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규제 강화로 점쳐졌다. 지난 2년 간 유지됐던 오너 일가의 글로비스 잔여지분 30.0%의 보호예수도 해제됐다.

      이 때부턴 글로비스가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몇 년 전과 비교해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경영권 승계에 초점을 맞춘 지배구조 변화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지배구조를 변경하다가 총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주주가치 제고 움직임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핵심 기업들의 현금이 경영권 승계에 사용된다면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지주사 전환의 필요성도 물음표가 붙여졌다. 지주사 체제를 달성하려면 여러 번의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한다. 스튜어드십코드 강화로 까다로워진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많은 주총을 거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지주사 체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키는 후속작업에 대주주 또는 핵심기업의 여유자금이 묶이게 된다.

      그러면서 주목받은 것은 글로비스였다. 글로비스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는 것이 기존의 시나리오들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주주가치의 제고, 순환출자 구조의 해소, 그리고 경영권 승계까지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가 CKD 등 계열사 대상 매출이 큰 사업부를 매각해, 총수일가의 지분 매각 필요성을 없애고 동시에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 자금까지 조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현대글로비스가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취득하면 현대차그룹의 핵심 순환출자 구조는 끊기고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완전한 경영권 승계와 추가적인 순환출자구조의 해소(현대제철의 현대모비스 지분 처분)를 완성하고자 한다면 PEF와 같은 제 3의 주체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PEF가 현대글로비스와 공동으로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고 기아차 및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형태다.

      ◇ 사회 분위기 고려해 모비스 중심으로 한 '정공법' 선택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현대차는 이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28일 전격적으로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직접 제시했다.

      현대모비스의 모듈 및 AS부품 사업을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기로 했다. 한 때 지주사 역할론까지 언급된 글로비스는 사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모비스는 사실상 지주사 격으로 격상, 그룹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가 그룹 간 지분을 매입, 매각해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끊어내는 방안도 확정했다. 그룹 지배구조의 방향성을 먼저 정하고 자금 조달 방안 등 구체적인 사항은 그에 따라 맞춰 진행된다.

      사실 이번 발표 내용도 초창기에 거론됐던 시나리오 중 하나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 작업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에 좀 더 무게감을 실었다는 평가다. 비용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지도 않았다. 자칫 승계에 방점이 찍히게 될 경우 감당해야 할 무형의 부담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의 전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투자금융업계 관계자는 “취약한 지분율과 현대차의 환경을 고려하면 개편 과정에서 주주 지지와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필수적”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사업 효율화, 주주환원정책, 지배구주 투명성을 동시에 내세워야 하고, 이번 조치가 이를 반영한 것 같다”고 전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점도 확실히 못박았다. 현대차는 현대카드를 제외하면 재무적투자자(FI)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그것도 그룹 지배구조와는 무관한 딜(Deal)이었다. 외부 투자자들에 대해 보수적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지배구조 개편과 승계에 외부 개입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