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편에서 드러난 기아자동차의 그룹內 입지
입력 2018.04.02 07:00|수정 2018.04.03 09:45
    그룹 핵심 '모비스' 지분 팔고 '글로비스' 인수
    사실상 지배구조 하위 전락…오너 보유 지분 매각 가능성도
    사업 돌파구 찾기도 어려운데 그룹 지원 가능성은 '희미'
    •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서 기아자동차는 사실상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아차는 오너 일가에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해 알짜 자산을 팔게 됐고 결국 그룹 지배구조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다. 제네시스와 현대자동차에 치여 3순위 신세인 기아차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그룹 내 입지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오너 일가가 현대모비스의 지배력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은 모비스와 글로비스를 합병한 후, 글로비스 지분을 기아차에 매각할 계획이다.

      합병과 지분교환이 완료되면 모비스와 기아차의 관계는 절연된다. 기아차는 현재 모비스의 지분 16.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이제껏 '모비스→현대차→기아차→모비스'의 탄탄한 연결고리의 한 축을 담당하며 오너 일가의 경영권 확보를 지원해 왔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모비스에 대한 집중도는 높아졌지만 기아차는 그 수혜를 누리지 못하게 됐다.

      오너 일가, 즉 정의선 부회장과의 관계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와 국민연금에 이은 기아차의 3대 주주다. 오너 일가가 모비스 지분율을 높이는 작업이 시급한 상황에서 정 부회장이 보유한 기아차 지분도 매각 대상으로 충분히 고려할만한 카드란 평가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정 회장 부자가 모비스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선 현재 제시된 지분 스와프 이외에도 다양한 자금 마련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룹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모비스 지분만 보유하면 되기 때문에 기아차를 비롯한 나머지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기아차는 정의선 부회장이 그룹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회사다. 정 부회장은 피터슈라이어 사장을 비롯해 적극적으로 해외 인재를 영입했고 '디자인 혁명'이라 일컬어졌던 중형 세단 'K5'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켰다. 정 부회장이 기아차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2009년까지만 해도 기아차가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정 부회장이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이후부턴 조직을 이끌고 그룹에 적극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업적 측면에서도 집중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룹 차원의 최우선 과제는 제네시스의 글로벌 시장 안착과 현대차의 판매량 회복이다. 동급차종에 대한 신차출시와 판매 마케팅 측면에서 제네시스와 현대차가 우선시 되다 보니 기아차는 늘 기회를 뺏기는 모양새였다. 기아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0% 이상 급감해 약한 입지를 체감했다.

      분할합병 이후 모비스는 '자율주행'과 '커넥티비티(Connectivity)' 등 미래차 핵심기술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다. 기아차가 모비스 최대주주의 자리를 잃고 현대차의 자회사로 전락한 상황에서 그룹 핵심 기술지원이 얼마나 이뤄질지는 미지수란 평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모비스→현대차→기아차의 구조에선 현대차의 입지는 더 단단해지고, 기아차의 목소리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며 "(기아차가) 모비스의 자회사가 되지 않는 이상, 기아차만의 성장 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룹의 지원이 없다면 기아차가 외부 세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대주주인 현대차의 기아차 지분율은 34%다. 한때 8만원이 넘던 주가는 3만원 초반에 그치면서 현대차의 지분 가치는 4조5000억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만을 놓고 봤을 땐 그룹 차원의 기아차 지원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현대차의 지분율을 고려할 때 기아차의 경영권을 노린 외국인 투자자들의 공격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대차가 지분율을 높이거나 모비스가 지분을 매입하는 등 그룹의 적극적인 방어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기아차는 2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글로비스 지분(30%) 가치는 약 2조원,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 지분(16.9%) 가치는 약 4조원이다. 주가 추이에 따라 주식교환에 따른 차익이 감소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정 회장 부자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주식교환 시점에 모비스의 주가가 떨어지고, 글로비스의 지분 가치는 높아지는 것이다.

      2조원의 현금이 유입된다 해도 오롯이 기아차가 이를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평가다. 기아차는 1999년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2001년 현대제철, 2015년 현대건설 인수 등 그룹 외형 확장에 참여해야 했다.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에서 기아차가 또다시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