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인수 일년 반...텅 빈 옛 삼성생명·화재 사옥
입력 2018.04.02 07:00|수정 2018.04.03 09:45
    옛 삼성생명·화재 본관 건물, 대부분 공실
    오피스 임대 사업 전략 부족 지적
    공실 줄이고 되파는 전략 쓰는 외국계 투자자와 대비
    • 부영그룹이 오피스 임대시장에 야심 차게 발을 담갔지만 부진한 모습이다. 조 단위 돈을 들여 인수한 삼성생명·화재 사옥은 일년 반이 넘도록 텅 비었다. 부동산 업계에선 전략 부재 경험 부족을 꼬집는다.

      부영그룹은 지난 2016년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사옥과 삼성화재 사옥을 각각 5800억원, 4400억원에 매입했다. 시간이 벌써 일년 반이 지났지만 임차인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교보리얼코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삼성생명 태평로 사옥의 공실률은 지하 상가를 제외하면 80~90% 수준이었다. 지하 5층~지상 25층(연면적 8만7646㎡) 중 5만6198㎡가 공실이 났다. 올해 1분기에도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해 신한은행과 롯데카드가 임차인으로 들어가며 빈 공간을 채우긴 했지만, 이들이 임차한 7개 층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공실 상태다.

      을지로에 있는 삼성화재 사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은 지하 6층~지상 21층 건물로 지난해 1분기 연면적 5만5312㎡ 중 2만5553㎡가 공실 면적이었다. 올해 지역별 유명 맛집 20여 개가 한곳에 모인 대형 식당가가 지하 1층~지상2층에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곤 여전히 대부분이 공실이다. 특히 삼성화재가 사용하던 11층 이상부터는 비어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부영 측에서 부영태평빌딩(옛 삼성생명 본관), 부영을지빌딩(옛 삼성화재 본관)의 공실률을 밝히는 것을 꺼려해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높은 공실률을 기록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높은 임대료가 공실의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여의도에 있는 금융사들이 서울 도심지역으로 이전하는 추세여서 적정 임대료 수준만 되어도 공실을 메우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란 견해가 많다. 하지만 부영은 건물 매입가격이 높아 쉽사리 가격을 낮추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다 임대료를 낮추는 문제는 결국 오너인 이중근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라서 누구도 나서서 임대료를 내리자고 말을 하기 힘들다는 후문이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공격적으로 서울 도심 오피스에 투자하는 외국계 투자자들은 임대료를 대폭 낮춰서라도 일단은 채우자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당장 높은 임대료를 받는 것보단 안정적인 장기임차인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는 까닭이다. 이후 빌딩을 다시 내다 파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위면적당 최고가에 팔린 광화문 더케이트윈타워다. 미국계 사모펀드(PEF)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2014년 홍콩계 투자회사인 림어드바이저스와 총 5000억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해 올해 삼성SRA자산운용에 7140억원에 매각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우리카드, 매일유업 등 본사가 입주해 공실률이 10% 미만이었던 점 등이 매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 자산운용사 오피스 시장 담당자는 “부영이 오피스 임대 사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것도 높은 공실의 원인으로 꼽힌다”라며 “과감하게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빈 공간을 채워야 하는데 오너를 비롯해 경영진이 이와 같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