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5·인피니온부터 시작된 눈치싸움…현대차는 언제까지 삼성을 견제할까
입력 2018.04.03 07:00|수정 2018.04.04 09:42
    1994년 삼성의 자동차 진출…현대차 불편한 속내
    비메모리 사업 진출 추진한 현대차, 삼성에 가로막혀 '공분'
    미래차 시장에서 맞붙는 현대차 vs 삼성
    "협업 가능성 열려있지만, 최고경영진 '견제심리'에 제동"
    • 현대자동차와 삼성의 자동차 경쟁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7월, 정부가 자동차산업 합리화 조치를 해제하자 삼성그룹은 승용차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1994년 삼성그룹의 본격적인 자동차 시장 진출은 기존 자동차 업계의 대대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시장 단연 선두였던 현대차 경영진들은 삼성의 자동차 시장진출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삼성자동차는 프랑스 르노(Renault)에 매각됐고, 제너럴모터스(GM)는 대우자동차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 현대차가 글로벌 업체들에 치이는 위기를 맞자 당시 현대차 경영진들 사이에선 "탄생하지 말았어야 할 삼성차가 출범하면서 시작된 일"이라며 공분을 샀다고 전해진다.

      2010년 독일의 반도체 회사 인피니온(Infineon)의 비메모리 사업부가 인수합병(M&A)시장 매물로 등장하자 현대차와 삼성은 또 한번 부딪혔다. 현대차는 인피니온 비메모리 사업을 인수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에 돌입했다. 삼성전자 또한 인수를 추진할 것이란 이야기가 돌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는 부인했다.

      자동차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현대차에서 인피니온 사업부 인수를 추진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에 이 사실을 전하면서 우회적으로 막아선 사례가 있다"며 "이로 인해 현대차 경영진이 굉장히 불쾌해하며 삼성과의 협력관계를 일부 끊을 것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이후 삼성은 전장부품을 차세대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직접 BMW와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 부회장이 피아트-크라이슬러 지주회사인 엑소르(Exor)의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완성차 업체들과의 협력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현대오트론을 출범시키며 자동차용 반도체 내제화에 나섰다.

      2016년, 삼성은 글로벌 전장 업체 하만(Harman)을 인수했고 다시 한번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완성차 업체로 진화할 것이란 예상에는 선을 그었으나 미래차 시장, 특히 '커넥티드카' 분야를 선점해 시장 주도권을 갖겠다는 의지는 확실히 보여줬다. 최근에는 하만과 첫 공동개발 작품인 디지털 콕핏을 선보이며 사물인터넷(IoT)의 적용 범위를 자동차까지 확대했다.

      삼성에 맞서 현대차도 미래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는 미국의 최대 네트워크 업체인 시스코(Cisco)와 중국의 바이두(Baidu), 자율주행업체 오로라(Aurora)와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삼성그룹 출신 인사들의 영입도 활발하다. 지난해 초 삼성전자 기획팀 부사장 출신의 지영조 부사장(본부장)을 영입해 미래차 사업을 맡겼다. 지 부사장이 이끄는 전략기술본부는 모빌리티·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을 연구개발하며, M&A 등을 추진하는 그룹의 핵심으로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전사조직이다. 전략기술본부는 지 부사장 영입에 이어 삼성전자 출신 인력들을 대거 수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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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그룹 미래차를 이끄는 3인방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부사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차인규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장(부사장)

      현대차는 최근 들어 글로벌 업체들과 협력을 늘려나가고 있지만, 삼성과의 관계에 있어선 특유의 견제심리가 남아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가 최근에 발표한 지배구조 개편안 또한 삼성과의 '선 긋기'라는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는 해석도 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이 아직도 현대차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경영진과 실무진에서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최근 주요차종에서 하만 사운드 시스템을 뺀 것은 사소한 이슈이지만 이외에도 삼성의 신사업 진출과 연구개발 현황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응하며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있다"고 했다.

      현대차와 삼성의 경쟁 관계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가 점차 디지털화하고 차후에 움직이는 '전자제품'으로 변모하게 되면 아직까지 내연기관에 머물러 있는 현대차의 위기감은 심화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확보, 즉 현대차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삼성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올해 초 지영조 부사장은 지난 1월 "6개월 내 삼성전자와의 협력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고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또한 현대차와 협력계획에 대한 질문에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현대차와 삼성의 협력은 양측의 투자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현대차는 세계 1위의 전자업체를 파트너로 맞아 미래차 시장에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삼성그룹 또한 전장부품을 구현할 수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가 잘 갖춰진 현대차를 마다할 요인이 별로 없다는 평가다.

      이 같은 효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란 평가도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미래차 기술연구와 M&A를 추진하는 현대차 일부 경영진들이 삼성 또는 글로벌업체와 협업에 대해서 필요성을 느끼고 그룹에 제안하고 있지만 현실화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며 "현대차 최고경영진 특유의 견제 심리가 남아있는 한 사실상 삼성과의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