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상실 삼성증권, '초대형IB' 자격도 흔들린다
입력 2018.04.09 13:12|수정 2018.04.10 09:43
    대응은 빨랐지만...브랜드가치 훼손 뼈아파
    '중징계' 가능성 언급...발행어음 등 신사업 중단 위기
    • 삼성증권 우리사주 전산오류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당장의 금전적 손실은 생각보다 크지 않더라도 시장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초대형 금융투자사업자(IB)로서의 자격과 존재감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사태로 기관 중징계 가능성이 유력하게 언급되며, 사업 확장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이번 사태의 배경으론 직원 등의 실수 외에도 여러가지가 꼽힌다. 일반적으로는 주식결제부서와 전산부서 사이에는 크로스체크(양자확인) 시스템이 있지만, 삼성증권의 경우 우리사주조합 관리 시스템에 재량권을 지나치게 많이 부여한 게 아니겠느냐는 지적이다. 일반 투자자의 경우엔 배당 관련 전산 문제가 없었다.

      실무자의 주식 입고 처리 과정에서 책임자급의 견제장치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증권예탁원도 기본적으로는 증권사의 전산 정보를 신뢰하는데다, 공매도 주식의 경우 수량을 회사 단위 및 일간 단위로 정산하기 때문에 장중의 잘못된 입고와 매도를 걸러내지 못했을 거란 분석이다.

      사건이 일단 일어난 후의 삼성증권의 대응은 그나마 빠른 편이었다. 삼성증권의 상장 주식 수는 8930만주 수준이고, 일일 거래량은 평균 50만주 안팎이다. 이런 종목에 단 하루동안 500만주 규모의 숏커버링(공매도 주식 결제를 위한 매수)이 들어가면 주가 변동성이 더 크게 확대될 위험이 있었다.

      삼성증권은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 부서 등을 활용해 주식을 대차하고, 불안해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결제 불이행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며 주식을 사모았다. 그 결과 결제에 필요한 500만주를 당일 확보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삼성증권의 손실액은 매도액과 매수액간의 차액, 거래비용, 투자자들의 소송으로 인한 손해배상액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응이 빨랐기 때문에 손실금액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손실 규모는 현재 1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지난해 삼성증권 당기순이익의 5% 수준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삼성증권이 '삼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부실'을 노출했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증권담당 연구원은 "브랜드 가치 훼손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개별 계열사 이사회 위주의 경영방침이 시행되며 삼성증권의 수익성 위주의 사업을 벌였다. IB부문 인력을 확충하고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를 세웠으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지급보증 거래를 3년만에 진행하기도 했다.

      연초 이후 그룹 이슈가 부각되며 다시 경영방침이 보수화하는 기조를 보였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예상보다 빠른 속도의 냉각이 불가피할 거란 게 내부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당분간 충성 고객 관리 위주의 자산관리(WM)와 수수료 기반(fee-base)의 소극적인 영업만 가능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전후무후한 전산오류 사태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회사가 기관 경고를 받으면 1년간 신규 사업 진출이 금지되고, 업무정지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3년간 신사업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자기자본 4조원을 갖추고 초대형IB의 핵심인 발행어음업 인가를 신청했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으로 인해 대주주 적격성 이슈가 부각되며 심사가 중단됐다.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며 심사가 속개될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다시 결과를 알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9일부터 시작된 금융당국의 특별검사 결과 징계가 확정되면 아예 인가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영업이 위축되고 초대형IB의 핵심 라이선스도 확보하지 못한다면, 삼성증권의 경쟁력은 경쟁사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대형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상장회사이자 5대 증권사인 삼성증권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어떻게 이렇게나 허술할수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는 투자자는 없을 것"이라며 "증권사에 대한 신뢰 그 자체의 문제로 확산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9일 오전 투자자 민원접수 및 피해보상 응대를 위한 '투자자 피해구제 전담반'을 설치했다. 전담반은 이학기 고객보호센터장(상무)을 반장으로 금융소비자보호팀과 법무팀 등 유관부서 담당자로 구성됐다. 삼성증권은 이날 오전 11시 현재 59건의 피해 구제가 신청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