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입력 2018.04.13 07:00|수정 2018.04.17 10:23
    올 6월까지 콜옵션 행사 '가정'해 바이오로직스 상장 성사
    행사되지 않으면 바이오로직스 다시 연결재무 반영 필요
    증선위 특별감리 진행 중...삼성물산 합병 논란 재점화 우려
    이재용 부회장 3심 영향·여론 생각하면 콜옵션 해줘야 '수월'
    • 삼성의 바이오 산업 진출에 '우군'으로 참여했던 미국 바이오젠이 결단을 내릴 시기가 다가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운데 최대 49.9%를 싼 가격에 사갈 수 있는 콜옵션(Call-option) 행사 기한 만기가 오는 6월말이다.

      행사 여부는 아직 알져지지 않았지만 이 결단이 삼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높다. 그룹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삼성이 손해(?)를 보더라도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주길 바라야 한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에피스 주식 30%가량을 3조원에 살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해당 이슈가 다시 불거졌다. 삼성물산은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라는 부인 입장을 밝혔다. 정작 옵션 계약 당사자이자 최대 주주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전후사정 파악도 못하고 '그룹'이 나서서 해결 할 일이라며 우왕좌왕했다.

      바이오젠은 2017년 연례보고서(2017 Form 10-K)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에 대한 콜옵션을 언급하며 행사 기한은 오는 6월말(Mid-2018)이라 명시했다. 또 기간 내 행사하지 않을 경우 옵션이 소멸하는 동시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분을 인수할 권리를 갖게 된다고 명시했다. 행사가격은 초기투자금액(최초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100%에 투입된 돈은 3300억원에 그친다)에 이자율을 더한 가격으로 대략 수천억원 수준이다.

      그간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은 회계법인을 동원해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100%가 5조원의 값어치가 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그러니 삼성의 주장을 따르면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지분은 2조5000억원에서 최대 3조원에 육박하는 가치를 지녀야 한다. 이를 불과 수천억원에 사갈 수 있다면 바이오젠은 당연히 콜옵션을 행사해야 한다.

      거꾸로 삼성 입장에서는 3조원 값어치의 주식을 불과 수천억원에 바이오젠에 넘겨야 할 상황이다. 그러니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그룹에는 유리해 보일 수 있다.

      한 투자업계 소속 회계사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00% 자회사 되면 파생부채였던 것이 이익으로 잡히게 된다”며 “이를 감안하면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삼성 입장에선 고마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한다고 해서 삼성이 30%를 무조건 되살 것이라는 전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콜옵션 행사로 지분율이 5대 5가 되면 이사가 동수이기 때문에 경영전략을 결정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변수가 남아 있다. 지금 삼성그룹이 처한 정치적인 상황이다.

      현재 삼성 입장에서는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해 주는 것이 여러모로 삼성에 유리하고, 또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3심 재판에 미칠 영향, 해를 넘겨가며 증권선물위원회가 한국공인회계사회까지 배제하고 진행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별감리,  그리고 최근 삼성증권 사태에서 또 한번 불거진 '삼성'이란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생각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 일단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SK그룹·LG그룹보다 더 높게 평가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가 뒤틀린다.

      우선 2016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코스피에 13만6000원이란 공모가격으로 상장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삼성바이오에피스 기업가치였다. 자산규모 3000억원도 되지 않고 적자가 누적되는 회사를 '종속기업'(Subsidiary)에서 '관계회사'(Affiliate)로 분류하면서 지분법을 적용했다. 그리고 "미래에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정법을 도입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5조원짜리 회사라고 주장했다. 이 덕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도 가능했고 그 회사가 지금 시총 4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지도 모르니 관계회사로 보겠다"라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이런 상황에서 콜옵션이 행사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다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으로 끌여들여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하고 자산, 부채 그리고 이익에서 여러 항목이 크게 뒤바뀐다. 과거와 달리 지금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익을 내고 있지만 이런 변화가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측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에서 주장했던 '가정법'이 결국 틀렸다는 결과가 나온다. '바이오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과 공모가 산정 논리가 오류였다는 것이 드러나는 셈이 된다.

      가뜩이나 코스피 상장을 두고 특혜 의혹이 일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다. 마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을 목전에 앞두고 거래소는 상장 요건을 ‘시총 2000억원 & 이익 50억원 & 자본 300억원 또는 ‘시총 6000억원 & 자본 2000억원’으로 신설했다. 이 가운데 두번째 조항 덕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이 가능했지, 그렇지 않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사가 되기 어려웠다.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중 하나였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의 재점화 가능성도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합병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 등이 합병법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면 보유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되는 게 유리했다. 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도 '삼성바이오에피스 가치 상승→삼성바이오로직스 가치 상승→(합병전)제일모직 가치 상승' 이란 연결 덕분에 가능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매년 수천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하며 일부를 무형자산으로 인식했고 그 결과 비용은 줄고 반사적으로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서 합병 전후에 미리 이익을 부풀려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였다는 게 증권가와 정치권의 지적이었다.  지금 증선위의 특별감리도 이와 연결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다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가 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기업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게 되고 삼성물산 합병 과정의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며 “바이오젠의 콜옵션 미행사가 자칫 이재용 부회장의 3심에 불리한 요소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침 최근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매도 파문은 결국 회사, 더 나아가 이재용 부회장에까지 책임을 미루는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이 다시 불거지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삼성 입장에선 바이오젠이 콜옵션 행사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예상한대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했으니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도 정상적인 과정이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논란 재점화 우려도 줄어든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재무제표의 변동으로 인한 주가 흔들림도 막을 수 있다. 현재 재무제표가 콜옵션 행사를 가정해 작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가 흔들리면 '성난 주주'들의 비난이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3심을 앞둔 상황에서 더 이상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콜옵션 문제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물산, 삼성전자의 주주들의 불만을 키우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 정부의 코드에 발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정상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