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부재 드러낸 현대차...'주주 달래기 vs 표대결' 경영진 엇박자
입력 2018.05.31 07:00|수정 2018.06.04 09:14
    현대차 경영진, 낮은 이해도 등 미흡한 IR 태도 도마에
    모비스 "주주 달래기: vs 현대차 "주주 표대결" 메시지도 충돌
    입지 미약한 정의선 부회장...힘 싣지 않는 부회장급 인사들
    • 이번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정의선 체제로 전환'의 밑그림을 그려줄 중요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발로 물러서야 했다.

      그 와중에 현대차그룹은 '구심점'과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약점을 드러냈다. 주요 경영진들이 제각각 목소리를 내면서 혼란을 가중시켰다.

      일부 경영진은 투자자 설득 과정에서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는 평가다. 특히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가신'(家臣)이라 평가 받는 인사들 사이에 해묵은 갈등도 다시 불거졌다. 이런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개편안 실패의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일단 현대차 임원들이 국내외 투자자에게 분할합병 비율을 설득하는 기업설명회(IR) 과정에서 '실력부족'이 드러났다.

      현대차그룹 임원진들은 지배구조 개편 발표와 함께 투자자들을 접촉하고 IR 활동을 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를 비롯한 투자자들은 개편안에 반발했고, 현대모비스 주가는 급락해 주주총회 안건 통과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상황임에도 투자자들이 보기엔 현대차 경영진들의 태도는 절박하지 않았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모비스 경영진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IR 당시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모습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심지어 '배당을 늘리면 주가가 올라가느냐' 등의 멘트가 나올 정도였고,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개편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못하고 나와서 경영진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핵심 주주인 국내기관을 상대로 한 IR에서 현대차그룹 담당자가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팔아라"는 얘기까지하면서 분위기가 급격히 냉랭해졌다"고 설명했다.

      언론을 통한 공식적인 응대도 비슷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경영진은 정제되고 단일화된 메시지를 보내기보다는 각 임원들이 제각각 앞다퉈 제 목소리 내기에 바빴다. 이들이 내놓은 메시지가 서로 앞뒤가 맞지 않아 시장의 혼선을 사기까지 했다.

      현대모비스의 임영득 사장은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모비스의 분할합병은 주주가치 제고에 필수적"이라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동시에 모비스는 전례 없는 6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또 다른 주체인 현대글로비스 김정훈 사장은 한발 물러나 있었다.

      반면 현대차는 이원희·정진행 사장이 직접 나서서 오히려 주주들을 강하게 밀어부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정진행 사장은 "표 대결을 자신한다"며 자사의 개편안에 동의하지 않는 주주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모비스 사장단이 시장에 보낸 메시지와 정반대로 움직였던 셈이다.

      이러다가 개편안이 실패로 돌아가자 강성 목소리를 내던 현대차 사장단의 모습은 싹 사라졌다. 임영득 현대모비스 사장과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사장이 나서 '소통이 부족했다'며 입장문을 냈다. 뒤늦게 HMC투자증권 이용배 대표 등이 시장 관계자들과 관련 미팅을 잡으려 하면서 '뒷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연스레 그룹 전체가 하나된 목소리를 내도 모자란 상황에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룹 내부에서 통일성을 갖춘 메시지를 마련하고 전달하는 창구부터 부족했다는 것. 심지어 계열사 사장들이 제 각각 메시지와 보도자료를 배포해도 걸러내거나 조율하는 과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거 삼성그룹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단일화된 창구로 정제되고 통일된 메시지를 보냈던 모습과 정반대였다는 비교를 받을 정도였다.

      메시지가 엉키다보니 기관투자가들은 현대차그룹이 진정 지배구조 개편을 원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당장 이번 개편안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게 된 국민연금은 개편안 찬반 여부를 두고 '잘해야 중립'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찬성'을 선택할 명분이나 논리를 현대차가 제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또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만나 설득작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캐피탈그룹(The capital group)과 블랙록(Black Rock) 등 글로벌 운용사들 또한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조율부족과 엇박자는 정의선 부회장의 '미약한 입지'가 원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즉 정의선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고위직급, 특히 정몽구 회장이 선임한 부회장급들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힘을 실어주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재 현대차 그룹 핵심조직인 전략·재경·노무 파트에는 대부분 정몽구 회장의 최측근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 단연 '실세'로 꼽히는 이는 김용환 부회장이다. 그룹 전체 전략기획을 비롯한 총괄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9년 부회장직에 올라 그룹 최장수 부회장이 된 그는 2011년 현대건설 인수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 받는다. 전형적인 참모형 인사로 분류된다.

      이외에도 윤여철 부회장(정책개발·노무 담당)과 연구개발의 핵심인 양웅철 부회장(연구개발본부·차량지능화사업부 담당) 모두 정몽구 회장의 오른팔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그나마 정의선 부회장 측근으로 꼽히는 이들은 전략기술본부를 중심으로 한 젊은 경영진들 정도다. 고위급 인사로는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권문식 부회장, 기아차 시절부터 함께한 정진행 사장 정도가 측근으로 손꼽힌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부회장급 최고위 인사들의 역할이 미미했고, 굉장히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도 사실이다"며 "정의선 부회장 집권 이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부회장급 라인에선 굳이 현 시점에서 정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줄 유인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재계에선 현대차 그룹 내에 'MK(정몽구 회장)라인' 과 'ES(정의선 부회장)라인'간 알력 다툼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양웅철 부회장과 권문식 부회장이다.

      이들은 1954년 같은 해 태어나 서울대학교 동기(각각 기계설계학과ㆍ기계공학과)이기도 하다. 두 부회장 모두 연구개발 부문에서 수행하는 업무도 비슷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시로 충돌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2015년 권문식 부회장의 승진 이후 두 부회장간의 충돌은 끊임없이 있어 왔고, 두 인사의 이견으로 인해 연구개발과 제조에 대한 콘셉트가 수시로 바뀌는 탓에 심지어 협력업체들까지 고충을 토로할 정도다"고 했다.

      결국 이런 식의 해묵은 '라인 대결', 그리고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힘 실어주기 부족이 이번 개편안에서 현대차 그룹이 보인 컨트롤타워 부족의 실제 원인이 됐다는 의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았던 부회장 인사들의 대부분은 정의선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받던 시절 '스승'으로 모시던 분들인데 이제 와서 책임을 묻고 내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정 부회장에게는 아버지 세대 인사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룹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