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업체 전환 선언한 현대모비스…협력업체 사실상 각자도생?
입력 2018.06.18 07:00|수정 2018.06.19 09:26
    현대모비스, 소프트웨어 업체 전환 위한 로드맵 발표
    협력업체와 어떻게 생태계 구축할 지는 빠져
    자금난 심해지는 협력업체 속출...현대차는 묵묵부답
    • 현대모비스가 소프트웨어(SW) 중심 회사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룹의 미래를 선도할 기술개발에 힘쓰겠다는 의미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벌써부터 시큰둥하다. 협력업체는 물론이고 그룹 부품 계열사의 실적은 계속 악화하는 실정인데,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반쪽 짜리' 장밋빛 전망만을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달 초 소프트웨어 중심의 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현재 800명인 연구개발(R&D) 인력을 2025년까지 확충하고 글로벌 연구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룹 부품사의 맏형 격인 현대모비스가 핵심 부품업체로 자리매김하고 연구개발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에 대해 이견을 다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소프트웨어를 중심 축으로 한 부품업체로 탈바꿈하기 위해선 계열 부품사는 물론이고 1•2차 협력업체들의 확실한 부품 라인업이 뒷받침 돼야 한다. 다만 이번 발표에는 어떠한 분야에 인력을 집중하고, 어떻게 그룹 부품 계열사와의 관계를 재정립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모비스가 소프트웨어 인력을 충원한다고 회사의 성격이 180도 달라지거나 그룹 내 위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분할합병 실패 이후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비전을 보여주기 위한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현대모비스의 'SW업체로 탈바꿈 의지'를 계열 부품사들은 사실상 '각자도생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미 현대차와 부품사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 상태다. 부품사들은 현대차가 승승장구 할 때는 '마진율' 압박이, 최근 수년간 판매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한 후부터는 원가절감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가운데 협력사들과의 접점이 가장 많았던 현대차 구매본부는 과거 소통창구의 역할을 하지 못한지 오래됐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나마 상황이 괜찮았던 계열 부품사들도 최근 들어 실적이 크게 악화하기 시작했다. 현대위아는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2015년 5000억원에서 지난해 167억원으로 급감했다. 현대케피코는 2016년 2600억원을 기록했던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지난해 1350억원 수준으로 반토막 났다. 이 업체들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압박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금조달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계열업체들의 신용등급 하락은 궁극적으로 최우량 등급을 지켜온 현대차의 신용등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협력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상당수 업체들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다. 일부 대형 부품사들은 은행권에서 긴급자금을 마련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계열사와 협력업체들은 실적 부진과 자금압박 속에서 현대모비스가 내세우고 있는 '미래차' 시장에 대한 준비는 아직 먼 나라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현대차그룹에서 부품업체들이 직접 R&D를 하고 자체 역량을 키워나가는 걸 원치 않았다"며 "현대차가 부품업체를 선정할 때 공급에 대한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다른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것을 원치도 않을뿐더러 이 때문에 딱 먹고살 만큼만 마진율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영세한 업체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현대차 및 계열사를 중심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 또한 "최근 들어 현대차 부품사들이 컨설팅을 의뢰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며 "현대차만 바라보고 수익을 만들어 내기엔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은 각자 도생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했는데 현대모비스의 비전에는 이 같은 상황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현대모비스가 부품사들과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인력을 충원해 자체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히려 미국과 중국 등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주요 국가로의 인력 유출을 걱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