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편입 이후 투자 재개된 '팜한농'
남북 교류 중단되며 비료부문 적자 누적
최근 화해 분위기에 M&A 결정 인사들 '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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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곤지암 부근엔 약 41만평 규모 화담숲이 펼처져있다. ‘정답게 이야기 나눈다’라는 뜻의 화담(和談)은 최근 작고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호이기도 하다. 공익재단인 LG상록재단이 지난 2006년 부지를 매입 후 조성을 시작해 2013년부터 외부에 전면 공개됐다. 자생 식물만 약 4000여종에 달한데다 천연기념물인 원앙도 서식할 정도로 화담숲은 국내 최고 수준의 수목원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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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원예와 조류에 관심이 깊었던 구 회장은 직무를 보지 않는 휴일이면 직접 화담숲을 찾아 숲을 가꾸고 새를 관찰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고인이 직접 유언으로 수목장(樹木葬)을 당부했을 정도다. 지난해 병환으로 수술을 받은 직후에도 가장 먼저 화담숲을 직접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LG그룹 내 관계자는 “구 회장이 생전에 직접 종묘시장에서 종자나 비료, 농약 등을 손수 꼼꼼히 챙겼을 정도로 애착이 컸다”고 전했다.
농업에 대한 LG그룹 창업주 일가의 관심은 선대 구인회 회장에서부터 시작돼 대를 이어왔다.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지난 1995년, 고인인 구 회장에 그룹 경영을 물려준 후 현재까지 농업에 헌신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농·축산업은 생명산업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LG도) 농업근대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얘기를 남기기도 했다.
LG그룹의 종자 육성 및 농약과 비료 국산화에 대한 열망은 곧 현실이 됐다. 지난 2016년 LG화학의 팜한농 인수로 국내 최대 농자재 계열사를 직접 보유하게 됐다. 당시 경영난을 겪던 동부그룹에서 LG로 적을 옮기며 팜한농의 재무 상황도 한결 숨통이 트였다. 중단됐던 연구개발(R&D)과 인재 영입도 재개돼 회사도 활기를 찾았다.
당시 M&A를 주도했던 관계자들 사이에선 인수 후일담도 전해진다. 사실 LG화학 실무진이 당시 가장 시급하게 물색했던 매물은 신사업으로 추진 중인 ‘바이오’ 관련 회사로 알려졌다. 팜한농의 농자재 사업에도 일부 바이오 성격이 있어 ‘그린 바이오’로 분류하고 있지만 의약분야 등 순수 바이오에 비해 시너지 측면에선 순위가 밀려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선 뚜렷한 매물이 보이지 않는 데다 농업 분야에 대한 그룹의 애착이 컸던 만큼 인수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실제 M&A 협상 측면에서도 LG화학이 거래 주도권을 이끈 사례로 꼽힌다. LG화학은 당시 동부그룹과 재무적투자자(FI)와의 복잡한 협상 끝에 약 4200억원에 인수에 성공했다. 당시 IB업계에선 연간 상각전이익(EBITDA)만 300억~400억원씩 창출하는 작물보호(농약 등) 사업 부문만 고려해도 기업가치가 약 5000억원 수준으로 언급됐다.
다만 LG 편입 이후 실적 측면에서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주력사업인 농약 부문은 꾸준한 영업이익을 창출했지만 비료 부문 등 기타 사업에서 적자를 피하기 어려웠다. 현재 비료사업은 농협이 전국단위 입찰을 통해 비료를 일괄 매입하고, 이후 농민들에게 보급되는 구조로 공급이 이뤄진다. 이익이 박해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손해를 보는 구조다. 팜한농도 비료부문에선 매해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9년여간 이어진 보수정권도 팜한농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 국가 차원에서 북한으로 비료 지원길이 열렸던 시기에는 비료 수요가 늘어 업체들도 한숨 덜 수 있었다. 하지만 2010년 '5·24 조치' 이후 남북교역이 중단돼 지원이 끊겼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최근 북한과의 대화가 재개되며 회사 내부의 기대감도 어느 때보다 커졌다. 대북 지원 재개 가능성도 조금씩 되살아나며 실적 회복에 대한 자신감도 커지고 있다. 한 관계자는 "실무진들도 '남북 경협'으로 뒤늦은 인수 시너지를 찾았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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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6월 17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