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2시간에 경쟁력 약화 우려하는 자본시장…"차라리 처벌 받겠다"
입력 2018.07.02 07:00|수정 2018.07.03 09:19
    대형 금융사 및 자문사들 52시간 대응책 부심
    투자 부서 “밤새 일해도 실적 못 채울 판에…”
    자문사 “인력 채용 어렵고 업무 질 하락 불가피”
    •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을 앞두고 자본시장에선 가뜩이나 떨어지는 경쟁력이 더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입 취지엔 공감하면서도 자의로 일하는 고액 연봉자까지 적용대상에 넣을 필요가 있느냐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처벌을 감수하고라도 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은 다음달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춰야 한다.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 금융사와 대형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대부분이 적용대상이다. 정부가 6개월간 사업주의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보니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은행들은 일찍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규칙적으로 운영되는 일반 영업점들은 52시간 규정을 준수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근무 시간이 들쑥날쑥한 투자 부서들은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기본 근무는 40시간이고 52시간까지 늘리기 위해선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도 거쳐야 한다.

      시중은행 투자역은 “큰 투자건은 길게는 몇 달간 야간, 주말 근무를 해야 하는데 52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올해 목표치를 채우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투자역은 “회사 입장에선 근로 시간을 52시간까지 늘리자니 노조에 많은 것을 내줄 수밖에 없다”며 “근로시간 규정 위반자와 사업주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 때문에 관리자급 인력들이 직원들에 일도 못 시키고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증권사 투자 부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보다 거래를 발굴하고 주선하는 데 특화돼 있다. 투자 자산을 고정적으로 안고 가는 형태가 많은 은행보다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형 증권사 투자담당 부서장은 “국내 증권사들이 주 52시간만 일해서는 주 100시간씩 일하면서 큰 돈을 만지는 글로벌 IB를 절대 따라갈 수 없다”며 “해외에 산적한 투자 기회를 잡기 위해선 처벌도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 글로벌 담당자는 “과거엔 추가 시간 수당을 제한 없이 청구했지만 앞으로는 근로시간 제한 때문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 우려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며 “외국처럼 직원들이 근로 시간에 알아서 일을 마쳐야 하는 시대가 됐지만 문화로 정착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 등 자문사들의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일부 누락돼왔던 수당을 제대로 지급한다는 긍정적 효과는 있다면서도 생산성 저하를 타개할 묘책은 내놓지 못한 분위기다. 인력 수급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오래 전 외국과 무역 갈등이 불거질 때면 회계법인이 몇 달이고 우리 기업 편에 서서 반박 논리를 만들었다. 다소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외국 회계법인이 생각하는 근로 시간 안에선 수행할 수 없는 방법들이라 의심을 피한 경우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법무법인들이 글로벌 로펌을 상대로 승리할 때면 ‘몇 날을 날 새워 대응한 끝에 승리했다’는 설명이 붙는 사례가 많았다.

      앞으로는 우리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들은 긴 근로시간에서 경쟁력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회계법인 사이에선 ‘시간이 없어서 분식회계도 못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고액 연봉자를 법의 보호 영역에 넣을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이 나온다. 대형 회계법인은 대체로 입사 후 10년 안에 억대 연봉자 대열에 오르고, 대형 법무법인은 그보다 빨리 억대 연봉을 받는다. 스스로 일을 더 하고 돈을 더 벌고 싶은 사람에겐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52시간만 일하려면 인력을 늘려야 하지만 임금 삭감은 불가피 하고 채용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신규 변호사에 일을 많이 맡기게 되면 업무의 질이 떨어지는데 고객들에 기존과 같은 수준의 수수료를 청구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