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요금인하 발언 자격있나"…'뿔난' SK텔레콤 주주들
입력 2018.07.04 07:00|수정 2018.07.05 21:13
    • “SK텔레콤이 자체 조사한 결과 이동통신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 대부분이 자신의 요금제에 대해 과도한 지출’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회사 이익이 좀 줄더라도 SK텔레콤 고객들이 더 싸게 쓸 수 있는 요금제를 내놓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서울 한 행사장에서 한 발언이다. 미국 시카고대 한국총동문회가 연 시카고 포럼에서 최 회장은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설명하며 계열사 SK텔레콤의 요금제 인하를 시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소 그룹 내에서도 “회장님 관심은 사회적 기업과 SK하이닉스(반도체)뿐”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최 회장의 애정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그룹 총수가 할 수 있는 일상적인 발언 정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SK텔레콤 투자자들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우선 법률상 최 회장이 SK텔레콤 요금제에 ‘훈수’를 둘 지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현행 법률상 회사 경영에 대한 '법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등기이사들이 지게 된다. 등기이사는 주주총회 소집과 대표이사 선임권, 투자, 채용, 임원 인사 등 회사 경영전반에 걸쳐 중요사항을 의결한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지주사 SK㈜의 최대주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지만, SK텔레콤의 등기이사는 아니다. 최 회장은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에선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SK텔레콤 임원은 아니다. 최 회장은 그룹 분식회계 사태와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던 지난 2004년 SK텔레콤 등기이사 자리에서 사퇴했다. 김상조 현 공정위원장이 이끌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주주제안이 받아들여졌다.

      2009년 우여곡절 끝에 다시 SK텔레콤 등기 이사로 복귀했지만 2014년 대법원에서 회삿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이 확정된 뒤 다시 모든 계열사의 등기 임원에서 물러났다. 2016년에 지주사 SK㈜의 등기임원으로 복귀해 그룹을 총괄하고 있지만, 현재 SK텔레콤에선 주식 100주를 보유한 소액 주주다.

      물론 ‘옥중 경영’, ‘회장의 결단’이라는 미사여구가 유통되는 국내 재계 환경에선 ‘영양가(?)’ 없는 지적일 수 있다. 그룹 내에서도 SK텔레콤 모든 임원이 반대하던 하이닉스 인수를 오직 최태원 회장과 박정호 사장만 밀어 붙였다는 일화는 이제 미담이 됐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불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점차 국내에도 기관투자가, 외국인 주주 등 주주들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최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요금제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발언일 수 있지만 무게감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당장 그룹 중추인 박정호 SKT 사장이 경영을 이끌고 있지만 박 사장 역시 외부 영입 인사가 아닌, 최 회장 심복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최 회장의 발언에 반기를 들긴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SK텔레콤은 통신 3사 중 가장 먼저, 그리고 지속적으로 탈(脫)통신 선언을 내세워 왔다. ‘통신업’에 매몰된 사업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명 변경을 추진했을 정도다. 요금제 인하라는 외부 충격을 통해 조직에 자극을 주려는 의도일 수 있지만, 주주들이 안심할 만큼 뚜렷한 대안을 마련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연이어 하락세를 보이는 SK텔레콤의 주가는 이를 방증한다. 고질적인 적자를 보이던 11번가가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3조원에 달하는 ADT캡스 인수에도 성공했지만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실적 악화와 밀려오는 규제의 해법으로 ‘사회 공헌 및 이해관계자의 행복’은 다소 구체적이지 않다는 우려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투자업계에선 미국발(發) 금리인상, 미·중 무역분쟁 우려 등 대외변수가 커지며 전통적인 내수·안정적 투자처인 통신주에 대한 투자심리도 점차 회복되고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지 못하는 SK텔레콤을 선뜻 담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고질적인 정부 리스크를 안고 있는 KT와 함께 외면 받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통신·미디어 본업에 집중하는 LG유플러스로 향한다.

      한 기관투자가는 “11번가 문제 해결, 도시바·ADT캡스 인수 등 박정호 사장이 공언한 약속들을 지키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까진 어떤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할 지에 대한 청사진이 뚜렷하진 않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이 정부 규제와 직접 맞서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인 건 이해하더라도 계열사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발언을 대외적으로 한 점은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