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치 훼손 우려 아시아나항공, 산은·공정위는 뭘 했나
입력 2018.07.05 07:00|수정 2018.07.06 09:03
    •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자율협약을 졸업할 때까지 5년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감독 아래 있었다. 자금줄을 쥔 산업은행은 회사의 거의 모든 경영 활동을 살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다.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을 돕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든 채권을 회수해야 하는 금융회사로서든 철저한 파수꾼 역할이 요구됐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를 지키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행보를 방조하며 잠재 가치를 훼손시켰다. 사실상 그룹의 전부인 아시아나항공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재건을 위한 불쏘시개가 됐다. 오너 일가가 주주로 있는 회사로부터 자산을 사올 때는 비싸게 팔 때는 싸게 파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아시아나항공 초유의 기내식 대란 사태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기내식 업체를 교체하는 시기, 그와 무관한 오너 회사가 급부를 챙겨가는 데도 산업은행은 묵인했다. 가뜩이나 유동성 압박에 허덕이는 회사는 막대한 미래 이익을 외부에 저당 잡혔다. 오너의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보이는 새 업체는 통상보다 훨씬 긴 계약을 맺으며 사실상 독점권을 가져갔다.

      주요 주주인 금호석유화학도 이런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다만 금호석유화학은 기내식 사업과 관련된 비판과 문제 제기를 꾸준히 이어 왔다. 목적이야 어떻든 회계 장부도 살피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소한의 견제 역할을 한 셈이다.

      산업은행 일각의 문제 인식은 안일하다. 역할에 충실했다면 오너 일가의 전횡이나 기업가치 훼손을 막을 수 있었다는 데는 생각이 미치지 않고 있다. 기내식 사태로 기업 이미지가 깎이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정도다. 불행한 사고가 없었더라면 단순한 해프닝에 그쳤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채권자로서 임무를 고의로 방기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면 배임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채권만 많을 뿐인데 뭘 할 수 있겠냐며 겸손을 떨지만 산업은행이 주인 이상의 힘을 가진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산업은행과 척을 져서 좋은 결말을 맞이 한 기업들이 없다는 점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산업은행은 다른 위기 기업에는 항상 원칙을 지키고 엄정했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무딘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 내부에 ‘금호 장학생’의 영향력이 여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일몰로 채권단 주도 구조조정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있다.

      올해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의 주도 아래 금호사옥, CJ대한통운 주식 등을 적극적으로 처분하며 유동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그 성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일부는 ‘재무구조 개선’이라기 보다는 ‘실책의 만회’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책임론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공급계약 갱신거부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신고를 받았지만 무혐의 종결처리 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했다거나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일견 수긍할 만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의 결정이 순수하게 자의에 따른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공정위는 ‘재벌 저격수’ 김상조 위원장의 주도 아래 재벌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여러 개혁 방안 중에서도 가장 역점을 두고 살피는 것이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다. 겉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기업도 샅샅이 뒤지고, 재벌 오너들을 불러 모아 숙제 검사를 해 왔다.

      아시아나항공은 수년간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해 소모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회사 설명대로 기내식 업체야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오너 일가 회사가 이득을 봤다면 그 사실관계를 더 꼼꼼히 살필 필요가 있었다. 그에 앞서 이뤄진 석연찮은 거래들도 마찬가지다. 피해는 고스란히 아시아나항공 직원과 다른 주주들에 돌아갔다.

      재벌 오너라도 직접 주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 받는 시대다. 창업주 일가의 전횡을 의례히 묵인해주던 시기는 지났고, 오너의 갑질 척결은 사회적 과제가 됐다. 공정위가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재벌 개혁 명분과 동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번 정부 들어 이뤄진 구조조정에선 한국지엠, 금호타이어 등 호남 쪽 기업들의 타격이 많았다. 공정위가 미온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오너 일가가 호남 출신이었다는 연결고리만 남은 기업을 봐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