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적 항공사의 낯 뜨거운 '품격' 경쟁
입력 2018.07.09 07:00|수정 2018.07.10 09:24
    • 2010년 2월, 일본 국적 항공사 일본항공(JAL)이 파산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만 2조3000억엔이 넘었고 자본잠식에 빠졌다.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13개월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JAL의 파산은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한 때 ‘일본의 날개’라고 불렸던 이 기업은 10년간 정부로부터 네 번의 구제 금융을 받았지만 엄청난 부채와 함께 파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일본 경제에 큰 실망을 안겨줬다.

      5만명이 넘는 지원을 고용한, 유럽 최대 항공사인 에어프랑스는 프랑스의 우아함과 기술을 상징하는 국가의 얼굴이다. 2015년 10월, 에어프랑스 노동조합원에게 셔츠가 찢기는 수모를 당하면서 도망치는 에어프랑스 간부들의 모습이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에어프랑스 본사에서 회사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경영진 회의가 있었는데 노조원들이 이를 급습하면서 벌어진 사건이다. 당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에어프랑스 경영진에 대한 노조의 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면서 프랑스 이미지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국적 항공사는 본의 아니게 그 나라의 ‘얼굴’을 맡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얼굴’은 말이 아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갑질ㆍ미투운동ㆍ 횡령ㆍ배임 등 리스크들을 마치 경쟁하듯 드러내고 있다. 누가 더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는지 경쟁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전방위적인 라이벌 관계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후발주자인 아시아나항공의 항공시장 진출로 국제노선의 다양화, 항공료 인상 억제 효과, 기내 서비스 질 향상 등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지나친 경쟁의식과 밥그릇 챙기기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이 사고를 냈을 때 받은 운항정지 처분이 너무 약하다며 성토하기 일쑤였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아시아나항공이 ‘마카다미아 너츠’를 기내 면세품으로 판매한 사건도 여전히 회자된다.

      아시나아항공의 기내식 제공 중단 사태는 또 다른 촌극을 보여줬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3개월 간 기내식을 요청했지만, 대한항공은 여러 사정을 이유로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 지난 3일 기내식 사태가 급속도로 커지자 대한항공 측은 야근을 해서라도 추가 물량을 생산해보겠다는 의사를 전했지만 아시아나항공은 내부 회의 끝에 거절하기로 했다.

      그래놓고서는 박삼구 회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극단적으로 대한항공에서 도와주면 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죄송스럽게도 협조를 못 받았습니다”라며 책임의 일부를 대한항공에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JAL과 에어프랑스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잇따른 오너 리스크와 그로 인해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오너들의 불성실한 답변을 보면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기업의 평판이 중요해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지속가능금융'이 강조되고 있다. 항공사들은 당장은 여름 성수기를 맞아 실적이 개선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평판 악화로 새로운 투자를 유치 받기 어려워진다면 말 그대로 지속가능금융은 지금의 국적 항공사에 유효하지 않은 단어다. 두 회사 오너 간의 동업자 정신 부재 속에서 두 회사 직원들은 오너들의 갑질, 비리에 손을 맞잡으려 한다. 국적 항공사의 ‘도긴개긴’ 품격 경쟁에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