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업 최대 리스크는 정부?...투자시장 태엽 되감는 정부와 여당
입력 2018.07.26 07:00|수정 2018.07.27 10:00
    외국인, 정부 對기업 규제 리스크 지적
    각 정부부처 反대기업·反금융 기조 드러내
    공정위의 지주회사 인식 방향성 모호
    소비자보호 앞세운 금융당국, 자본시장국 격하
    기업 앞세워 新핵심산업 선도에는 무관심
    “미래 없이 지지층만을 위한 액션” 지적
    • 지난해 9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기업 신용도 개선의 위험 요소 3가지로 ▲중국 위험 ▲초과공급 위험 ▲규제 위험을 꼽았다. 10개월이 지난 올 7월에는 위험 요소가 ▲보호무역 ▲공격적인 재무정책 ▲규제 위험으로 바뀌었다. 대외적인 변수는 그 범위가 더 넓어졌고, 대내적인 변수는 변함이 없었다. 공격적인 재무정책의 배경 중 하나가 정부의 재벌 개혁 기조 때문이라면 규제 위험은 리스크 상수를 넘어 더 확대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바깥의 불안한 시선만큼이나 안에서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수출주도의 경제구조 하에서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정부 규제와 관련한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지지층의 지지를 확고히 해 정권을 연장하려는 청와대와 각 부처, 여당의 노력(?)이 반(反)대기업·반금융 정서로 이어져 전반적인 산업 경쟁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정책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근래 가장 큰 이슈는 지주회사 제도 개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계열사간 내부 거래 자체에는 중립적이고, 비정상적 거래만 규제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의 공정위는 내부거래 감소 자체를 정책 목적으로 삼았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은 할 말이 많지만 재벌 개혁 분위기상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한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맞춰 지주회사로 전환하라고 해서 이를 추진했는데, 갑자기 지주사 자체를 문제의 근원으로 삼아 황당하다는 것이다. 기존 정책을 신뢰해 전환한 선의의 기업집단과 편법·사익편취 목적으로 변질된 기업집단을 동일하게 강화된 틀 안에 가두는 것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서 제품경쟁력 강화,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 자금이 필요한데 정부의 재벌 개혁 기조로 투자 타이밍을 놓치고 그 재원을 규제 대응에 쏟고 있다”며 “이마저도 방향성이 불명확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의 반금융 기조도 뚜렷하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정기 인사에서 자본시장 관련 부서의 지위를 '국'에서 '정책관'으로 변경했다. 정책관이 준(準) 국장급의 지위라지만, 사실상 격하한 것이다. 소속은 금융소비자국으로 바뀌었다. 자본시장 활성화보다는 금융소비자 보호에 좀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소비자 보호 강화에는 이견이 없지만, 자본시장을 투기시장으로 이해하는 현 정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모험자본을 선순환 시키겠다며 코스닥 부양에 나설 땐 언제고, 규제와 세금 부담만 늘리려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금융당국이 이달부터 도입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개별 금융회사는 각각의 법에 따라 규제를 받고, 그 위에 새로운 규제를 만든다는 점에서 규제 옥상옥이라고 지적한다. 금융을 규제 산업이라고 인식하는 당국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는 평이다. 일단 모범규준이라는 모양새로 규제를 시작하고, 내년에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근거를 갖추겠다는 인식도 반(反)시장적이라는 지적이다.

      여권도 정부 부처 움직임에 궤를 같이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은 이달초 합병·분할합병·중요한 자산양수도 시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 및 계열사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을 '지배력 강화수단을 위한 악용'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주주(동일인)와 그 특수관계인은 아예 주총 참여를 완천 봉쇄하겠다는 취지다. 여당 발의 법안은 비합리적인 명분으로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는 상법의 원칙을 뿌리째 흔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당은 특히 삼성그룹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대 국회 출범 이후 여당에서 내놓은 삼성그룹 관련 규제안만 10여개에 이른다. 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여당이 내놓은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한다면 삼성그룹은 이사 선임 등 삼성전자에 대한 기본적인 경영권을 담보할 수 없게된다.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 역시 가능성이 사라진다. 분할된 지주회사가 안정적으로 사업회사의 지분을 확보할 수단 자체가 사라지는 까닭이다.

      국민들의 연금 수령, 즉 수익률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국민연금공단 역시 정치에 발목이 잡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스튜어드십코드 등 주주로서 국민연금의 권한 행사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업계 최고 전문가들을 모셔도 모자랄 판에 정치적 이유로 지방으로 옮겨진 이후 운용 핵심 인력들은 짐을 쌌고, 수익률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기금운용본부장을 찾지 못해 1년여간 공석으로 두고 있다. 말은 많지만 국내 금융시장에서 잘 나가는 사람 중 정치적 외압에 시달릴 이 자리에 지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게 투자금융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재계와 시장은 현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 대한 현실 인식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선진국들은 10년, 20년 후를 대비해 국가가 나서 신(新)핵심산업 육성에 매진하고 있고, 그 앞단에 기업들과 금융사들을 내세웠다. 내부적으로 금리를 낮추거나 유지하고 규제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결국 국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경제 주체는 기업과 금융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정부와 여권은 재벌과 금융사들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규정하고 지지층의 지지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자본시장의 판단이다. 대기업과 금융사들을 대내의 적으로 규정한, 기울어진 현실 인식이 과연 수출주도 하의 우리 경제, 그리고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 환경 속에 적합한 것인지 반문한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이미 우리나라 경제 시스템은 국제 금융시장에 편입돼 있는데 정치권은 우리가 잘 하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내수 활성화에 집착하고 있다”며 “외국인투자자들은 한국 투자의 최대 리스크를 ‘북한’에서 ‘정권 교체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옮겨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노무현 정신 구현을 강조하는데 여권과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을 아시아 금융시장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크게 못미칠뿐더러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비판은 곱씹어 볼 만 하다. 장 교수는 반도체, 바이오산업 등 우리가 주도하거나 뛰어든 산업은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가 투입돼야 하는데 이는 벤처기업, 중소기업으로는 절대 못하고 재벌밖에 못한다고 단언한다. 재벌들의 불법은 제재해야 하지만 재벌 해체로 우리나라 혁신이 더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꼬집는다. 규제를 과감히 푸는 대신 세금을 늘리고, 그 세수로 복지망을 강화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장기적 구조조정을 통한 경제 활력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을 관장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촌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