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리고 등용문 넓고…독립 선택하는 PEF 업계
입력 2018.07.27 07:00|수정 2018.07.26 19:03
    환경 변화·자기 사업 등 제각각
    돈·인력 많아져…독립사례 늘 듯
    • 사모펀드(PEF) 업계에서 원래 둥지를 벗어나 제 갈 길을 가려는 움직임이 잦아지고 있다. 조직 내 역학관계의 변화나 갈등, 자기 사업을 펼치려는 욕구 등 이유는 다양하다. 경력을 쌓아가는 운용역은 늘고 시장에 풀리는 자금도 넘치는 상황이라 앞으로도 이 같은 독립 사례는 늘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C PE가 영국 SC 본사에서 독립할 예정이다. 수년 전부터 독립이 검토돼 왔고 이르면 연내 실행될 가능성이 있다. PE부문은 SC그룹 본사(Standard Chartered PLC)의 증손자로 있다. 김태엽 SC PE매니져스코리아 대표를 비롯한 각 나라의 PE 수장들이 자금을 갹출해 PE 사업을 받아오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UBS그룹에서 독립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유사하다.

      SC PE의 독립은 금융그룹 내부 사정과 관련이 있다. 최근 수년간 성장세가 주춤한 SC그룹은 2015년 윈터스(William Thomas Winters) 회장 취임 후 비주력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유럽에선 자동차 리스 사업을 정리했고, 우리나라에선 SC저축은행·SC캐피탈 등을 매각했다. PE부문 독립도 그 연장선에 있다.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는 정한설 부사장(투자2본부장)이 지난달 사의를 표했다. 핵심 운용역으로 있는 펀드의 투자가 완료되고 다음 펀드에 이름을 올리기 전에 회사를 떠났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주요 출자자(LP)들에 정 부사장의 퇴임 소식을 알렸다. 정 부사장은 투자를 주도했던 한화에스앤씨의 비상무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정 부사장은 자기 운용사를 차리기 위해 퇴사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승승장구 하고 있지만 여타 PE 운용사보다는 일반 기업에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정 부사장은 충분히 투자 이력을 쌓았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철 전 오릭스PE 대표는 10년 이상 몸담았던 조직을 떠나 최근 독립 운용사 JC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수년 전부터 독립을 고민해 온 이 대표는 올해 초 일본 오릭스코퍼레이션에 독립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자칫 껄끄러워질 수 있었지만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JC파트너스는 일본 오릭스코퍼레이션 자금 5000억원을 받아 투자를 집행하기로 했다. 김신완 오릭스PE 부대표가 대표로 승진해 오릭스와 JC파트너스의 가교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JC파트너스는 별도의 블라인드펀드도 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운용사(GP) 역할에 관심을 가졌지만 자금력이 풍부한 일본 오릭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신중하지만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투자건이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독립계로 이동은 아니지만 이수용 전 퍼미라 한국사무소 대표가 올 초 마케나캐피탈 아시아 대표로 이직했다 최근 칼라일그룹에 합류한 일도 화제가 됐다. 아시아 크레딧 전략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대표는 이규성 칼라일그룹 공동최고경영자(Co-CEO)와 워버그핀커스(Warburg Pincus)에 같이 근무한 이력이 있다.

      독립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독립적 권한이 주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PEF 관계자는 “지금은 글로벌 크레딧 펀드로 묶여 있지만 이수용 대표 영입 후 별도로 아시아 크레딧 펀드를 결성해 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의에 의해서만 독립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대형 운용사에 있다 몇 년 전 여의도에 새로 둥지를 튼 A 운용사 대표는 ‘동업자들의 철저한 계획에 의해 쫓겨났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사무실도 전 직장이 있는 업무지구를 피해서 얻었다.

      다른 대형 운용사 B사의 창립 멤버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얼마간의 보수를 챙겨 회사를 나가기로 했다. 주식을 가진 파트너들의 입지가 강화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결정이 이뤄졌다. 소규모로 운영되며 모든 구성원이 끝까지 올라가기 어려운 PE 특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앞으로도 사모펀드 업계에서의 독립, 새로운 운용사의 설립 움직임은 많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몇 년 새 우후죽순 생겨난 운용사들에 인력이 대거 유입됐고, 투자 전문가도 많이 양성됐다. 단순히 PE내 구성원으로 머물러선 큰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자기 사업을 원할 것으로 보인다.

      기관투자가 PEF 담당자는 “최근 PEF 업계는 거래 기근에 고생할지언정 돈 걱정은 않는다”며 “시장에 돈이 계속 풀리고 있고 루키 운용사 등용문도 넓어진 상황이라 독립을 꿈꾸는 운용역들에겐 가장 호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