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M&A 뛰어든 국내 기업 떨게하는 공포의 'CFIUS'는?
입력 2018.08.22 07:00|수정 2018.08.23 16:06
    CJ·KCC 등 조(兆)단위 미국 기업 인수 뛰어든 국내사들
    미 특유 CFIUS 규제 다시 화제…"귀에 걸면 귀걸이 법"
    주로 中 기업 타깃이지만…독일, 싱가포르 등 예외 사례도
    • 올해 들어 국내 기업들이 미국 기업 M&A에 속속들이 나서고 있다. 대부분 글로벌 시장 및 미국 시장에서 수위권의 점유율을 보유한 영향력 있는 업체들이다. 예상 거래액도 조단위에 달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IB업계에선 미국 M&A 특유의 '정부 리스크'로 거래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언급된다. 행정부 의사에 따라 거래를 취소할 수 있는 CFIUS 규정이 대표적이다. 매도인과 매수자가 거래를 종결해 악수를 마치더라도, 곧이어 변호사와 규제 대응을 놓고 씨름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The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는 미국 재무부 장관을 의장으로 법무부ㆍ국토안보부ㆍ국방부 등 약 11여곳의 주요 정부부처가 참여하는 정부 기관이다. 외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할 경우 만약 투자로 인해 ▲외국 기업이 투자 대상인 미국 기업을 '지배(control)'하면서 ▲미국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CFIUS의 감사 대상이 된다.

      기업결합신고와 달리 CFIUS는 원칙적으로 인수자의 자진신고로 절차가 시작된다. 신고 이후 CFIUS는 30일 내 투자 승인여부를 결정한다. 만약 기간 내에 투자를 승인하지 않는 경우 그 후 45일 동안 추가조사를 할 수 있다. 즉 최초 신고 후 75일 이내에 ▲투자 승인 ▲조건부 승인(mitigation measures) ▲대통령에게 직접 투자승인을 거부하도록 권고를 택한다.

      조사 결과 해당 투자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경우 투자가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하더라도 그 투자를 되돌리거나(unwind) 투자 대상의 일부를 다시 매각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또 자진신고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문제 소지가 있을 경우 직권으로 감사에 돌입할 권한도 갖는다.

      한 대형 파트너 변호사는 “미국 법령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무자 사이에선 ‘무지막지한 조항’들이 많다”며 “심지어 중국이 인수한 회사가 공군기지 옆에 공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성사된 거래를 되돌려버리고 중국 인사들이 회사에 진입도 못하게 막은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 문제는 이처럼 강한 권한에 대비해 조항이 미국 행정부 판단에 따라 임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포괄적인 데 있다.

      우선 '지배(control)'의 정의와 '국가안보에 영향' 조항 모두 극도로 광의적으로 해석된다. 통상적인 ‘최대주주’는 물론 전환사채 보유 여부, 회사가 도산할 경우 자산이 어디로 귀속되는지 여부, 회사가 신규 투자 등을 유치할 때 잠재적인 투자자가 있는지 여부 등을 모두 검토한다. 글로벌 로펌 윌슨손시니(Wilson Sonsini Goodrich & Rosati)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진행된 M&A 거래 중 단 10%만 CFIUS가 규정한 지배'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거래'인 것으로 집계됐다.

      규정하는 ‘거래(covered transaction)’의 범위도 광범위하다. 안보와 직결되는 방위산업은 물론이고 IT‧운송‧바이어‧화학식료품‧에너지 등 거의 대부분의 산업군이 해당된다. 비단 미국 국적의 회사 뿐 아니라 해외 대기업의 미국 계열사‧관계사가 M&A에 해당 됐을 때도 CFIUS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프랑스 회사 인수에 나서더라도 미국 내 계열사가 포함돼 있을 경우 CFIUS가 제동을 걸 수 있다.

      그간 국내 기업들의 해외 M&A 과정에선 CFIUS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중국 혹은 중동 지역 내 자본에 대한 통제 기구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한 국내 파트너 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이 내부에서 문제 소지 여부를 검토하긴 하지만 신고 의무가 있진 않다보니 자발적으로 신고할 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한다 "불안하니까 먼저 물어보자는 사례도 있었지만 비용도 많이 들고 신고하면 미국 정부가 오히려 더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며 무시한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CFIUS를 바탕으로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급격히 늘면서 국내 기업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CFIUS가 감사에 돌입한 사례는 총 250건으로, 전년 대비 무려 40%가 증가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미 상원과 하원은 CFIUS의 권한과 수출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조항에 최종 합의했다. CFIUS는 외국 자본이 기업의 지배권을 갖지 않는 벤처캐피탈(VC) 펀드 등을 통한 투자에도 더 많은 조사 권한을 갖게 된다. 또 민감한 미국 시설과 부동산 거래에 대한 조사 권한도 확대됐다.

      ‘중국’외 국가들의 M&A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보이는 것도 불안 요소다. 글로벌 IT업계와 M&A 시장을 뒤흔든 이슈였던 싱가포르 계 기업 브로드컴의 미국 기업 퀄컴 인수가 대표적이다. 거래액만 약 11조원에 달했지만 CFIUS의 불허 권고로 최종 무산됐다. 지난해 CFIUS의 허가를 받지 못한 독일 기업 인피니온(Infineon)의 미국 반도체사 크리(Cree) 딜도 회자된다. 외견상 중국 기업이 개입되지 않았지만, CFIUS는 중국계 자본이 인피니온의 주요 주주로 참여해 Cree를 간접 지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들어 국내 기업들은 속속들이 미국 내 대형 매물들의 인수를 검토 중이다.

      KCC는 임석정 전(前) CVC캐피탈 대표가 설립한 PEF SJL파트너스와 함께  미국 최대 실리콘제조업체 모멘티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PEF가 가장 큰 지분(50%)을 보유하는 형태로 인수구조를 짜 CFIUS에 대응하는 모양새지만 순항 여부는 미지수다. CJ제일제당도 미국 식품기업 중 하나인쉬완스 컴퍼니 본 입찰에 참여해 막판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다른 외국계 로펌 관계자는 "미국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대형 M&A 거래에도 발휘하려던 성향이 강해졌고, 이로 인한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도 단순히 '우방국가'라 안심하기 보단 이전보다 관련 조항을 유심하게 살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