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서 비중 커 혼란 초래
-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의 행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외국계 증권사의 부정적인 리포트가 나오면 여지없이 그 종목을 팔면서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이다. 장기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해야 하는 연금 운용의 취지에도 벗어난다는 지적이다.
지난 10일 모간스탠리가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주의’로 낮추자 삼성전자 주가가 전일 대비 1500원(3.2%) 하락했다.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와 외국인이 대량 매도한 탓이다.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셀트리온, SK하이닉스 등 부정적인 외국계 리포트가 나오면 여지없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은 주식을 매도했다. 외국계 증권사 매도 리포트의 주 타깃은 주식시장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바이오 주다. 이들 종목이 국내 주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시장 자체가 흔들린다.
일례로 2017년 10월 18일 CLSA 증권사에서 D램 가격이 끝물이라며 SK하이닉스 매도 리포트를 낸 당일 국민연금은 32만주를 매도했다. 이후에도 10월 내내 매도물량을 쏟아내며, 주가하락을 부추겼다. 리포트 발표이전 8만원 선을 유지하던 SK하이닉스 주가는 7만원 대로 일시 하락하기도 했다.
-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우수한 수익률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올해에는 수익률이 곤두박질 쳐 5월말 기준 국내주식투자 수익률은 -1.18%에 그쳤다. 코스피 하락에 따른 영향이 크다지만 이것만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5년간 전체 운용수익률도 당초 예상보다 1.33%포인트 낮은 5.2%에 불과했다.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이 장을 망친다는 표현까지 한다. 올해 7월 말 기준으론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가 약 300개에 이른다. ‘국민연금 기금의 국내 주식시장 영향력에 대한 연구’ 리포트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순매수보다 순매도가 시장에 주는 파급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미국 등 주요 연기금 등이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 안팎에 불과하다.
기관투자자들은 구조적으로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에 국내 증시가 휘둘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통상 개별 주식을 운용하기 보다는 전체 시장의 인덱스를 추종해 국내 주식을 운용한다. 즉 인덱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주식의 주가가 빠지면 기계적으로 국민연금도 매도물량을 쏟아 낼 수 밖에 없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의 상당부분은 자산운용사들이 위탁 운용한다.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에 따라 외국인이 매도하면 위탁 운용사들도 따라 매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들어 국내 주식의 주요 투자주체가 외국인과 개인으로 바뀌면서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가 미치는 영향은 더 커졌다는 설명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개인과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라며 “이들이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에 움직이면 국민연금도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외국계 증권사들은 연구원 한 명이 커버하는 영역이 국내 증권사보다 많다. 인력 구조를 타이트하게 가져가기 때문인데 상대적으로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한 기업에 대해 깊이 있는 리포트를 쓰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외국계 증권사의 매도 리포트가 이슈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리포트의 ‘질’ 때문이 아니란 의견도 많다.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한 경우도 많지만 국내 증권사에서 매도 리포트를 안 내기 때문에 시장이 반응한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반도체 사이클이 다운 사이클로 가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 됐다”라며 “내용상 특이점이 없더라도 일단 매도 리포트가 나오면 개인이나 외국인들은 크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른 연금이나 공제회에선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들은 절대투자 수익을 추구하는데 국내 주식이 변동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운용이 중요한 국민연금은 오히려 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연못 속에 고래가 되어 버린 꼴이다”라며 “외국계 증권사 리포트 하나에도 시장이 흔들리는 것은 국민연금의 높은 주식비중과도 무관치 않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