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비중 늘리자는 실무자 목소리 묻혀
국민연금 CIO 선정 절차에 이목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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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기금이 증시 약세를 주도하고 있다. 최고투자책임자(CIO) 공석이 장기화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 축소에 나서며 다른 연기금들도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연기금을 필두로 한 기관 매수세가 실종된 가운데, 외국인 수급이 국내 증시를 뒤흔들고 있는 모양새다.
한 국내 연기금 운용역은 지난달 국내 주식의 절대적인 가치가 저렴할 때 비중을 늘리자는 의견을 냈다가 묵살당했다. 국내 주식은 점진적으로 비중을 줄이는 게 추세라는 이유에서였다. 8월 들어 외국인 매수세가 다시 들어오며 증시가 다소 회복됐지만, 이 연기금의 지난달 주식 수익률은 지수 상승률을 약간 밑돌았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지금 국내 주식을 더 사자고 하면 고위 관리자들로부터 '국민연금도 국내 비중을 줄이는 데 무슨소리냐'는 반박이 돌아온다"며 "미국 등 해외 선진국 주식·채권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중 무역분쟁 등의 영향으로 약세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6월 이후 국내 연기금은 1조5000억여원 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기관 전체 매도량의 75%에 달한다.
특히 6월에 대량 매도로 '충격'을 준 외국인들이 7월 순매수로 전환했음에도, 연기금은 오히려 이 시기를 기준으로 매도량을 크게 늘리며 주가지수를 더 끌어내렸다.
이는 이전에 '안전판' 역할을 하던 연기금의 모습과는 상반된다. 지난 2015년 그리스 발 금융위기가 왔을 때엔 연기금이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받아내며 증시 안정화에 도움을 줬다. 위기가 본격화된 6~7월 당시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3조원을 순매도 했을 때, 연기금은 1조원을 순매수하며 충격을 흡수했다.
연기금 매도세의 상당 부분은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이 연일 주식을 매도하자 일반적으로 국민연금과 비슷한 투자 행태를 보이는 국내 다른 연기금·공제회도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평가된다.
국민연금의 지난 6월말 기준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124조원으로 지난해 말 131조원 대비 약 6조7000억원 줄어들었다. 자산 포트폴리오 중 국내 주식 비중은 19.5%로 올해 연말 목표치인 18.7% 대비 1%포인트 가까이 높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연말까지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특히 7월 이후 대규모 매도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총 투자 허용범위가 ±5%임을 감안하면 여유가 있는 수준이지만, 자산 배분에 대한 판단을 내려줘야 할 CIO가 여전히 공석이라는 점이 문제로 지목된다. 지난해 "인위적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지 않겠다"고 시장을 달랬던 조인식 CIO 직무대리조차 지난 7월 초 사임한 상황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6월 시장이 급락하며 국민연금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로스 컷(loss cut;손절매)이 나온 종목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국민연금의 움직임이 다른 연기금은 물론 전반적인 수급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이목은 현재 진행 중인 국민연금 CIO 선정 과정에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CIO는 비단 국민연금 뿐만이 아니라, 국내 기관 전체의 국내 증시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인 까닭이다.
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지난 21일 최종 면접 끝에 5명의 후보자를 추렸다. 이들에 대한 인사검증 절차가 진행 중이다. 검증을 통과한 인사 중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1명을 선정해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게 된다.
현재 안효준 BNK금융지주 사장,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사장, 장부연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 이승철 전 산림조합중앙회 신용상무 등이 후보로 추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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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8월 29일 17: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