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상장사들, 지정감사제로 급등한 감사 비용 부담
입력 2018.08.30 07:00|수정 2018.08.29 18:56
    금융당국 감리 강화하며 회계법인들 '보수적' 태도
    관리종목 지정 상장사 감사비용 10배 늘어
    지난 2년간 안정화됐던 예비 상장사 감사비용도 들썩
    • # 올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코스닥 상장사 A사는 규정에 따라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았다. 회계법인과 미팅을 가진 직후 A사는 깜짝 놀랐다. 지정감사 비용으로 10억원을 제시받은 까닭이다. 기존엔 5000만원에서 많아도 1억원이던 '시세'가 급등한 것이다.

      # 상장을 준비하며 지정감사인을 신청한 B사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지정감사인 2곳이 제시한 감사보수 액수가 당초 상장주관사가 귀띔해준 금액보다 2배 이상 컸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그나마 낮은 금액을 제시한 중견 회계법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회계법인이 상장사·예비상장사에게 받는 지정감사 비용이 껑충 뛰었다. 회계감사와 감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잣대가 엄격해짐에 따라, 회계법인이 져야 하는 리스크 부담을 비용으로 전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반드시 지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상대적 약자'에게 일시에 대거 비용을 올렸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비용 장벽으로 인해 위축된 기업공개(IPO)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정감사 비용이 급등하기 시작한 건 작년 말 금융당국이 회계감리를 강화하겠다고 방침을 밝히면서부터다. 회계사들이 법적 처분을 받은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위축된 회계법인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 감리 이슈까지 불거지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향후 우려되는 리스크에 대한 비용을 감사 보수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한 상장사의 자본 조달을 위해 실사를 하는 도중 10억원대 비용이 잡혀있어 점검해보니 지정감사 보수였다"며 "몸을 사리려는 회계법인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지정감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기업에 부담을 지나치게 떠넘겼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비용 부담은 상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예비 상장사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016년 새 제도가 도입되며 부담이 다소 줄었다가, 감리 이슈가 불거지며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5년까지 지정감사는 단독감사제였다. 증권선물위원회에서 1곳을 정해주고, 1회에 한해 재지정을 요청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예비 상장사 지정감사 비용은 일반적인 연간 감사 비용의 3배에 달했다. 일반적인 중소기업의 연간 감사비용이 2000만~3000만원인데 비해, 지정감사 비용은 6000만~7000만원에서 경우에 따라 1억 이상도 필요했다.

      2016년 예비 상장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곳의 회계법인이 입찰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덕분에 지정감사 비용은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였다. 그러다 올해 들어 입찰에도 불구, 감리 강화 이슈를 타고 전반적인 감사비용 제시 가격이 오르고 있다. 다시 2015년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는 회계법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문제는 최근 미국 금리 인상화 미중 무역갈등, 터키 이슈 등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인해 증시의 힘이 빠진 상황에서 상장 비용 증가가 곧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정책적으로 벤처·중소기업의 상장이 장려되고 있는데 이들에겐 몇천만원의 비용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며 "감리 이슈가 지나가고 증시가 안정되면 다시 지정감사 비용이 내리지 않을까 기대하며 일정을 미루려는 기업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지금까지 국내 증시 신규 상장사 수(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는 35곳으로 지난해 신규 상장 수 82곳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금융당국에서 올해 코스닥 신규상장 예상치가 105곳이라고 밝혔지만, 증시 약세와 비용 부담 등으로 인해 달성이 어려울 거라는 게 현장의 중론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삼일 등 대형 회계법인은 문제가 있을만한 감사는 아예 맡지 않고,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회사만 맡아 단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영업방침을 바꾸고 있다"며 "당분간 감리 강화로 인한 비용 이슈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