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후 아마존·구글 목표주가 대폭 상향 조정
"글로벌 투자은행도 업황 전망에는 한계 명확"
그래도 국내 연기금은 외국계 레포트에 매도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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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중 무역전쟁의 먹구름이 짙던 지난 7월4일, 모건스탠리는 '이제는 보수적이어야 할 때'라며 기술주에 대한 업종 투자 의견을 '비중축소'로 낮췄다. 미국 나스닥 시장의 신고가를 이끌고 있는 기술주 업종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아마존·구글·애플 등으로 구성된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기술주들이 "전례없이 과하게 사랑받고 있다"며 "무역갈등으로 인해 폭풍우가 쏟아질 위험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시장 전반에서 리스크 자산에 대한 태도 변화가 목격되고 있다"면서 경기방어주인 통신과 필수소비재의 투자의견을 '비중축소'에서 '중립'으로 상향 조정했다.
# 지난 29일 모건스탠리는 아마존의 목표 주가를 2500달러로 제시했다. 이전의 1850달러보다 35%나 높여 잡은 것으로, 현재까지 제시된 목표 주가 중 최고치다. 같은 날 모건스탠리는 알파벳(구글의 지주회사)의 목표 주가도 1325달러에서 1515달러로 14% 상향 조정했다. 이날 아마존 주가는 3.4%, 알파벳 주가는 1.7% 올랐다.
아마존을 비롯한 기술주들의 강세에 힘입어 나스닥은 29일 8100선을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0일에는 다소 조정을 받았지만 장중 한때 8130선을 넘기도 했다.
기술주에 대한 모건스탠리의 '손바닥 뒤집기'가 국내 증시 관계자들의 도마 위에도 오르고 있다. 무역전쟁을 근거로 미국 기술주에 대한 보수적인 투자를 권고한지 채 2달도 되지 않아 핵심 기술주의 목표 주가를 대폭 상향했기 때문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땅은 예상보다 금방 젖는다는 은유까지 써가며 기술주 급락을 경고했던 모건스탠리가 주요 기술주 목표주가를 대폭 상향 조정한 건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시황·업종 분석과 기업 분석의 시각이 다를 순 있지만, 지난 29일의 레포트는 결과적으로 아마존을 비롯한 미국 기술주에 대한 낙관론에 힘을 실어줬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비중축소 레포트가 나온 직후 미국 기술주들은 횡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대장주 격인 아마존의 공매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 6월 초 74억달러(8조2000억여원) 수준이던 아마존 공매도 잔고는 7월 말 90억달러(10조원) 수준까지 증가했다.
그럼에도 아마존 주가는 7월 초 이후 1700달러선에서 2000달러까지 20% 가까이 추가 상승했다. 나스닥의 황금기를 이끌고 있는 주도주가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에서 MAGA(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애플)로 바뀌었을 뿐, 미국 기술주 주가 상승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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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의 악영향을 우려했던 모건스탠리가 예상과는 달리 기술주가 추가 상승하자 개별 종목 목표 주가 조정으로 '자기 합리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한 연기금 투자 담당자는 "실제로 모건스탠리의 최근 기술주 레포트는 미국 투자자 사이에서도 상당한 이슈가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라도 시장 전망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해프닝'은 국내 주식시장, 특히 최근 외국계 레포트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국내 연기금에 상당한 시사점이 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10일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축소'로 하향 조정했다. 낸드 플래시가 공급 과잉 국면에 진입했고, D램 공급도 3분기에는 수요를 따라잡아 가격이 급락할 거라는 이유에서다.
모건스탠리의 레포트가 나온 이후 30일까지 국내 기관들은 삼성전자 주식 885만주, 약 4000억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연기금에서 쏟아져 나온 물량이 328만주에 달했다. 기관 전체 순매도의 약 40%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오히려 이후 875만주를 순매수했다. 20일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이후 일주일간 10% 급등했다.
앞서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11월에도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의견을 비중확대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 했던 바 있다. 당시에도 연기금은 11~12월 두 달간 941만여주의 물량을 쏟아냈다. 그러나 모건스탠리의 전망과는 달리 반도체 공급 과잉 시점은 뒤로 미뤄졌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외국계 증권사 레포트인가'라는 말까지 나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연기금 내부 리서치 기능을 강화해 '면피성 매도'를 줄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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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9월 0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