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미국 마리화나 합법화 기대감
'죄악주' 관심 확산…경기 둔화 국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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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제일 '뜨거운' 주식을 고르라면 단연 '틸레이'가 첫 손에 꼽힌다. 지난 7월 주당 17달러에 상장한 틸레이는 불과 두 달만에 주가가 214달러까지 치솟았다. 공모가 대비 무려 12배나 높다. 장중 한때 주당 3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단순 계산으로는 상장 후 41영업일간 매일 평균 6.5%씩 주가가 오른 셈이다.
틸레이는 캐나다에 소재한 회사로, 국내에는 대마초로 알려진 '마리화나'를 제조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업계에서는 '죄악주'의 새 패러다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냐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죄악주(sin stock)이란 담배·카지노·방산·게임 등 유흥·주류·전쟁 관련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의 주식을 말한다.
틸레이 주가 급등은 펀더멘털과는 큰 관련이 없다. 틸레이는 지난해 매출액 2054만달러(약 226억원), 순손실 780만달러(약 86억원)를 기록했다. 주로 지금까지 의료용 마리화나를 제조해 유럽에 수출하며 매출을 올렸다.
19일 종가 기준 틸레이의 시가총액은 199억달러, 약 22조원에 달한다. 국내 시장과 비교하면 SK텔레콤 혹은 현대모비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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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가 G7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오는 10월 의료용은 물론, 오락용 마리화나 전면 합법화를 예고한 것이 이런 폭발적인 관심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도 워싱턴DC를 비롯해 30개주에서 의료용 등 제한된 목적으로 마리화나 판매를 허용하고 있으며, 점점 더 허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앞으로 합법 마리화나 시장이 전세계적으로·대규모로 확장될 가능성에 배팅하고 있다. 틸레이의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제기된다. 마리화나는 성장성이 한계에 달한 미국 담배 제조업체들이 영역 확장에 나서기에 안성맞춤인 사업으로 꼽힌다.
일부 벤처캐피탈(VC)은 '합법 마리화나'에 앞장서 베팅하기도 했다. 지난 2015년 실리콘밸리의 유명 VC인 '파운더스 펀드'는 틸레이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파운더스 펀드는 페이스북·에어비앤비·스포티파이·스페이스X에 투자해 성공한 것으로 유명한 투자자 피터 틸이 이끌고 있다. 파운더스 펀드는 틸레이 외에도 마리화나 품평 사이트 리플리, 마리화나 브랜드 말리 내추럴 등에도 투자를 집행했다.
틸레이의 주가 급등은 죄악주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퍼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죄악주 투자 펀드인 바이스 펀드(VICEX)는 최근 6거래일간 기준가가 연속으로 상승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성장주 위주 장세에서 담배·카지노 주식을 주로 담고 있는 바이스 펀드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만, 최근 반등의 실마리를 잡은 모양새다. 2003년 이후 바이스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지난해 말 기준 220%로, 같은 기간 170% 상승한 S&P500 지수보다 좋은 성과를 냈다.
미국의 이런 추세가 보수적인 국내 증시의 투자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죄악주는 경기 불황의 영향을 적게 받고 수요가 탄탄해 대표적인 경기방어주로 꼽힌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3%를 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고 각종 지표가 꺾이며 경기침체 초입 신호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죄악주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며 "마리화나 관련 업체인 틸레이의 주가 급등은 국내 증시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투자 전략에 참고는 할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죄악주의 성과도 그리 나쁘지 않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대표적인 죄악주인 KT&G의 1999년 상장 이후 2016년 말까지의 배당 포함 누적 연평균수익률은 9.5%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의 연평균 수익률은 5.7%에 그쳤다. 강원랜드 역시 같은 기간 상장 이후 배당 포함 연평균 수익률이 10.7%로, 코스피 지수의 7.9%를 크게 앞섰다.
신규 죄악주의 국내 증시 입성도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카지노업체 더블유게임즈의 자회사 디에이트게임즈는 지난 7월 삼성증권과 미래에셋대우를 상장주관사로 선정하고 한국거래소와 사전협의에 들어갔다. 디에이트게임즈는 미국 현지 모바일 소셜카지노 게임업체다. 홍콩 소재 소셜카지노업체 미투젠도 내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다.
한 증권사 상장 담당 임원은 "2001년 강원랜드 상장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거래소가 '죄악주'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사실"이라며 "미국처럼 마리화나 제조사가 상장할 수 있을 정도까진 어렵겠지만, 최근엔 거래소의 문이 좀 더 개방되며 좀 더 다양한 기업에게 상장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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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09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