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 오는데 정유·윤활유 지속가능한가"
감리로 일정 밀린데다 성장 청사진도 '다소 미흡'
정제마진 좋아지며 발행사-투자자 눈높이 미스매칭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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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시장(ECM)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시장 규모가 줄어든데다, 특정 업종으로의 쏠림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분(equity) 투자에 대한 리스크가 커지며 '제 값'을 받기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시장의 관심은 '올해 마지막 대어'로 꼽히는 현대오일뱅크로 향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감리 이슈에 발목이 잡혀 시간을 허비한데다, 시장의 분위기까지 돌아서며 '차라리 훗날을 도모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1일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국내 기업들이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등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규모는 총 7조3000억여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8조2000억여원 대비 1조원 가까이 규모가 줄었다. 만약 상반기의 대형 조선사 유상증자(2조6400억여원)이 없었다면 이 격차는 3조원 이상으로 벌어진다.
자금 쏠림 현상도 심했다. 101건의 공모 거래 중 21%가 바이오·제약 및 헬스케어 관련 기업이었다. IPO의 경우 올해 신규 상장 기업 넷 중 하나는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었고, 이들이 6500억여원을 조달하며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유상증자 시장에서도 공모 증자를 진행한 기업 다섯 곳 중 한 곳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었다.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특정 업종만 시장에서 '잘 팔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 증시 흐름과 경기 전망이 좋지 않은 가운데, 유통시장에서 빠져나와 눈치를 보던 자금이 성장이 기대되는 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지금 국내 증시가 외국인에게 휘둘리고 있는 건 주식에 대한 국내 투자 수요 자체가 줄어든 까닭"이라며 "자동차·반도체 등 기존 주력 산업에 대한 수급은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2차전지나 IT·바이오 등 성장산업에 주로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장 상황은 상장을 기다리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에 불리한 흐름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대오일뱅크가 올해 시장에서 기다려 온 초대형 거래인 것은 맞지만, '성장 스토리'를 원하는 지금의 투자 트렌드에는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외국인 및 기관투자가들은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는데 기름·윤활유 사업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현대오일뱅크가 신성장동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윤활유 사업조차 '구시대 산업'으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상장을 철회한 SK루브리컨츠 역시 이 '장벽'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당장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 발행사와, 해당 기업은 물론 정유 산업 자체에 대한 투자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잠재투자자들의 눈높이 자체가 달랐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6월 이후 급등한 정제마진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유업계 수익성 지표인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지난 6월 배럴당 평균 4.1달러로 저점을 찍은 후 7월 평균 5.3달러, 8월 평균 6.7달러, 9월 평균 6달러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 유가도 상승세를 보이며 정유업계 수익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발행사와 투자자 사이의 '미스매치'를 이끌어내기 쉽다는 점이다. 발행사는 당장 대규모 수익이 나니 눈높이가 한껏 올라가겠지만, 투자자들은 성장이 추세적으로 계속될거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평가다.
다른 증권사 정유 담당 연구원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은 복합적인 글로벌 경제 환경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예측이 어렵고 변동성도 심한 지표"라며 "당장 정제마진이 손실 구간인 4달러선까지 밀렸을 때 단기간에 회복할 거라고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력적인 '에쿼티 스토리'를 기대하기도 어려울 거란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 상장 과정에서 공모로 조달한 자금 상당수는 구주매출을 통해 현대중공업지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재 지배구조 개편과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중장기 비전에 해당하는 대규모 투자계획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투자한 자금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쓰이지 못하고, 그룹으로 옮겨져 빚을 갚는데 쓰인다면 그만큼 매력을 덜 느낄 수밖에 없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월 중순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아직 감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 투자자의 북(book)이 닫히는 12월엔 대형 공모가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선택지는 11월 공모나 1월 공모로 좁혀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시간에 쫓겨 급하게 공모를 진행하느니 업황과 증시 추이를 좀 더 지켜보는 게 나을 수도 있을거란 목소리가 나온다. 현대오일뱅크는 물론, 현대중공업그룹이 좀 더 설득력있는 성장 청사진을 갖춰야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맥락에서다.
한 연기금 주식투자 담당자는 "공모 시장에서 눈길을 끌려면 성장성이 뛰어나거나 매력적인 가격을 갖추는 방법밖에 없다"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성장주 위주로 돈이 몰리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이 현대오일뱅크에겐 딱히 유리한 환경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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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0월 01일 16:5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