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만에 또다시 '검은 화요일'
수급 무너지고 대외변수는 마찰 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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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가 또 다시 힘을 잃고 미끄러졌다. 국내 증시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외국인이 주식을 투매하자 기관들도 함께 팔자에 나서며 매도세에 힘을 실었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대외변수는 여전히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악재에 취약해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번달에만 두 차례 폭락하며 투자 심리는 악화하고 있다. 당분간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23일 코스피지수는 전일 대비 55.61포인트, 2.57% 급락한 2106.01에 장을 마쳤다. 장중 한때 '심리적 마지노선'인 2100선 아래로 지수가 밀리기도 했다. 외국인이 이날 하루에만 4184억원어치 주식을 내다 팔았다. 국내 기관도 2429억원을 순매도하며 합세했다. 코스닥지수도 3.38% 급락하며 719선으로 밀렸다.
지난 11일 4.44% 폭락한 이후 불과 열흘만에 또 다시 급락장세가 펼쳐졌다. 일본 니케이지수 2.67%, 중국 상해종합지수 2.26% 등 아시아 주요 증시 지수가 모두 약세를 보였다.
주요 금융지표 역시 증시와 함께 우려스러운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날 역외시장에서 달러-위안 환율은 달러당 6.9472위안으로 21개월만에 최고치였다. 환율이 달러당 7위안까지 오르면 중국 금융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탈할 거라는 우려가 많다. 원-달러 환율 역시 달러당 1137.60원으로 하루만에 9.2원 급등했다.
이날 증시 급락은 뚜렷한 원인이 있다기보단, 기존에 국내 증시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대외 환경이 여전히 호전되고 있지 못한 점이 다시 일시에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여전히 기준금리 연 4회 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선물 가격에 반영된 12월 미국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확률은 78%에 달한다. 지난 8월의 64%에 비해 훌쩍 뛰어올랐다. 이는 강(强) 달러를 만들어내며 국내 증시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미중 분쟁은 격화되는 모양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정부 인사들은 현지 언론에 '중국이 무역긴장 해소를 위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확인해주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22일 오후 필리핀·태국 등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 국가연합) 국가들과 남중국해에서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실시하며 미국과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날 장 마감 후 KB증권은 무역분쟁의 부정적 여파는 내년 1분기에 극대화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신동준 KB증권 수석전략가는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분쟁은 '미국 국가안보'를 위한 대중국 고립전략으로 격화하는 양상"이라며 "주식비중 축소를 통해 현금 비중을 확대하고 내년 1분기를 대비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유로존 갈등도 투자 심리를 제한하는 요인이다. 이탈리아가 기본소득 도입 등 포퓰리즘 정책을 반영한 적자 예산안을 두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고, 불과 1년도 남지 않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유로화가 약세를 띄며 상대적으로 달러화의 강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내 증시 안전판 역할을 했던 국민연금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언급된다. 23일 급락장에서 연기금은 코스피시장에서만 1626억원어치 주식을 매도했다. 기관 전체 매도규모의 3분의 2에 달한다.
이날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국정감사 자리에서 "국민연금 보유 국내 주식 대여 신규거래를 중지했다"고 밝혔다. '국민 돈으로 산 주식이 공매도로 인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는 여론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대여 비중은 국내 대차 시장 전체 규모의 1.8%에 불과하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인해 외국인들의 투자 심리가 악화하고, 대차 비용이 증가해 결국 수익자인 국민들이 이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연기금 주식담당자는 "믿을 건 그나마 국내 기업 실적 뿐이지만 글로벌 경기도 올해 4분기가 정점이고, 국내 경기는 이미 침체 국면이라 대응이 쉽지 않다"며 "수급도 펀더멘털의 일부라는 말이 있듯이, 수급이 무너진 상황에서 단순히 역사적인 저점이라고 주식을 쓸어담기엔 다소 리스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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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0월 23일 17:0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