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오를 것' 낙관론도 꺾여…올해 증시 충격 지속
무역분쟁 지속에 성장 전망치 낮아져…자본시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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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전망 뒤에는 언제나 충격이 있었다. 국내 금융시장은 코스피지수 3000 시대를 꿈꾼지 불과 반 년도 되지 않아 코스피 2000이 깨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증시·금리·환율·유가는 물론 성장률까지 비관적인 상황으로 돌아서며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불안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올해 연환산 기준 4%대 고성장을 기대할 정도로 호황을 기록 중인 미국이 기준금리를 계속, 더, 많이 올리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는 까닭이다.
완전 고용에 가까운 저실업률과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산업 수요 폭증의 수혜를 입은 미국 경제는 지난해 말부터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자금이 개발도상국(이머징마켓) 시장에서 미국 시장으로 이동하며 강(强) 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과열 경기를 우려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가 지난해 3차례에 이어 올해에도 3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이 같은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이머징마켓에서 자금 유출이 이어지자 터키·아르헨티나 등 체력이 약한 나라부터 경제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의 금리 인상을 심각하게 바라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지난해 이미 3차례나 올린터라 연준이 말하는 '중립금리'는 머지 않았고, 이미 시장에 다 반영돼있다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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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장의 낙관론이 상처 입을 때마다 증시는 요동쳤다.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연준이 올해 6월에야 금리를 올릴거라는 전망이 대다수였다. 연준이 3월 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2월 국내 증시를 비롯해 글로벌 증시가 큰 충격을 받았다. 연준이 6월 금리를 또 다시 인상하며 연내 4번 인상을 기정사실화하자 또 다시 증시는 급락했다.
연준이 9월 성명에서 통화정책 성명에서 '완화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한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중립금리 이상으로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10월 초 또 다시 충격이 찾아왔다. 10월 들어 약세를 보이던 코스피지수는 11일 하루에만 4.44%폭락하며 연 저점으로 추락했다.
한 증권사 전략담당 연구원은 "과거에는 연준의 금리 인상이 일시적인 변동성으로 작용했지만, 이제는 점차 연준의 논리를 시장 참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며 "그래도 주가는 오를 것이라던 낙관론이 9월 말 이후 급격히 힘을 잃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가 커지며 해외자본 유출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이 지난 9월 예정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한국은 지난 1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동결을 결정하며 양국의 기준금리 차이는 0.5~0.75%로 벌어졌다. 18일 기준 양국의 국채 10년물 금리 차이는 88.2bp(0.882%)로, 불과 한달 새 16.2bp나 격차가 커졌다. '글로벌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가 한국 국채보다 1%에 가깝게 수익을 더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채권은 물론, 환율로 인해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메리트가 줄어든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18일 금리 동결을 결정하자 원달러 환율은 급등했다. 1100원선에 다가서던 원달러환율은 다시 1140원을 향해 치솟고 있다. 원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는 수요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까지 기준금리를 3.25~3.50%까지 올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11월에 0.25%포인트를 올릴 수 있을지조차 금융시장의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양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2%포인트까지 벌어지면 그만큼 국내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물론 한국은행의 고민에도 일리는 있다. 미국은 10년만의 '골디락스' 호황으로 물가 상승 없는 경제 성장을 경험하고 있지만, 국내 경기는 이미 침체 초입 단계에 들어선 까닭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기존의 2.9%에서 2.7%로, 내년 경제성장률을 2.8%에서 2.7%로 하향 조정했다.
비관적인 전망의 바탕에는 경제를 뒷받침해온 수출에 대한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시작한 무역분쟁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보호무역 주의의 확산은 한국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에게 치명적이다.
미국은 이미 중국으로부터의 수입 물량 거의 전체에 대한 관세 부과에 착수했고, 중국도 그간의 부채축소 정책을 접고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1%포인트 낮추며 원화 환산 기준 1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중에 풀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미국과 끝까지 가보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 연기금 투자 담당자는 "지금 같은 대외 환경에서 강소국(强小國)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며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2.7%까지 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국내외 대다수의 전망은 ▲달러화가 이르면 7월 중에는 약세로 돌아서고 ▲미국 중간선거가 있는 11월까진 미중 무역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달러 강세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거, 미중 무역분쟁은 '내년까지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유가까지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배럴당 55달러 안팎이었던 두바이산 중질유 가격은 이달 초 2014년말 이후 4년만에 배럴당 83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친미 성향의 사우디아라비아 기자가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피살되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까닭이다.
고유가는 국내 경제에 비용 부담을 떠안긴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낮아지고 물가가 치솟으며 소비가 둔화할 수 있다. 최근 민간경제연구소인 현대경제연구소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국은행보다 낮은 2.6%로 전망했는데, 고유가를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결국 미국발 글로벌 폭풍 속에 국내 경제는 내년에 '버티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당장 내년 코스피 전망치를 제시해야 하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코스피 상단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제시해야 할지 골치를 앓고 있다.
자본시장도 초조한 눈빛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유통시장(증시)이 무너지면 발행시장도 자연스레 힘을 잃는다. 10월초 바이오주 주가 급락으로 인해 최대주주마저 합병 반대 의사를 통지한 휴젤처럼, 인수합병(M&A) 시도나 관련 자금 조달 환경이 경색될 가능성도 언급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연내 상장이 사실상 물 건너 간 현대오일뱅크나 호텔롯데 등 비상장 대기업은 증시 입성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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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0월 2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