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연구·개발법인 분리 논란 배경은 유가?
입력 2018.10.26 07:00|수정 2018.10.30 10:02
    생산 부문에 비해 R&D 부문 노하우에 높은 평가
    소형차 개발에 특히 강점…유가 상승 대응에 유리
    "최근 유가 상승…분리 후 소형차 집중 가능성도"
    • 한국GM의 연구·개발(R&D) 법인 분리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한국 시장 철수 수순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유가 상승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유가 상승 상황에선 소형차 분야의 중요성이 커진다. 소형차 분야에 강점이 있는 R&D 법인을 분리해 활용성을 높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국GM은 지난 7월 디자인센터와 기술연구소 등 부서를 묶어 올 연말까지 별도의 법인을 설립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4일 이사회, 19일 주주총회를 열어 이 같은 안을 확정했다.

      한국GM 2대주주 산업은행은 회사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삼고 있다. GM과 경영정상화 방안에 합의한 지 5개월 만에 미지급 지원금을 집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으나 앞으로도 법인 분리를 둘러싼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노동조합은 법인 분리가 GM의 한국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GM은 과거 내수 판매 부진과 높은 인건비를 문제로 호주에서 철수한 전례가 있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연명하다 지원이 끊기자 공장을 닫았다. 한국GM의 상황도 호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인 분리를 둘러싼 논란은 부문간 입지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평가다.

      한국GM의 생산 부문은 판매 부진과 공장 가동률 저하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공장을 폐쇄하며 몸집을 줄이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설비와 인력을 활용할 상황은 아니다. 내수도 수출도 활로를 찾기 쉽지 않다. 해외서 들여 온 차종들도 출시 시기와 가격 정책에서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분위기 전환에 실패했다. 회사 입장에선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와 파업 가능성도 부담될 수밖에 없다.

      R&D 부문의 분위기는 다르다. 다른 지역의 R&D 부문과 비교해도 실력이 좋고 생산성도 우수한 상황이다. 한국GM의 구조조정 가능성이 불거질 때에도 무풍지대였다. GM 본사에서 직접 챙기기 때문에 연구 인력들은 글로벌 기업에 다닌다는 자긍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GM이 한국에서 발을 빼더라도 중국 R&D 법인 혹은 본사로 옮길 수 있다는 기대가 많았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한국GM의 R&D 조직은 미국 본사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지 않음에도 산출물은 뒤지지 않는다”며 “산업은행 입장에선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GM 본사로서는 생산조직과 연구개발 조직을 함께 두는 것보다 분리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GM R&D 조직은 특히 소형차 개발에 강하다.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시절부터 쌓은 경차 및 소형차 개발 노하우를 세계적으로도 인정 받았다. 그룹이 전략적으로 키우는 전기차 볼트EV도 한국GM이 초기 개발을 주도했다.

      픽업트럭이나 상용차 등 미국 특유의 ‘큰 차’에만 특화돼 있던 GM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다양한 중소형 차량 라인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는 본사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파고를 넘는 데 힘이 됐다.

    • 한국GM의 소형차 기술은 GM이 유가 등락을 버티는 데도 도움이 됐다.

      2010년대 들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때는 연료 소비가 많은 대형 차량의 선호도가 줄 수밖에 없다. 자연히 소형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한국GM의 소형차 기술이 유가 변동 충격을 완충할 힘을 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부평 공장 가동률 역시 소형 SUV 트랙스가 지탱하고 있다.

      2014년 이후엔 유가가 급락하며 차량의 대형화가 이뤄졌고 SUV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우리나라에선 성적이 신통치 않지만 GM의 중형 SUV 에퀴녹스, 대형 SUV 트래버스도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공을 맛봤다.

      최근엔 다시 유가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1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앞선 경험에 비추면 소형차 라인업의 중요성이 커진다. 한국GM의 R&D 조직 활용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회사 입장에선 R&D 파트가 생산 파트와 분리되는 편이 관리에 수월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후 유가가 급등하면서 트럭 등 대형 차량 부문이 위축됐지만 GM은 한국GM의 소형차 노하우를 통해 충격을 완화했다”며 “최근 유가가 다시 상승하는 국면에선 최근 성공을 맛본 SUV보다는 중소형 차량, 한국GM R&D 조직의 중요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R&D 법인 신설을 생산공장 축소 혹은 한국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은 있다.

      회사는 중형 SUV 개발을 위해 R&D 법인을 분리한다는 입장이다. 회사가 기존 강점이 있는 분야를 내려놓고 새로운 영역을 키우려는 의도가 석연찮다는 지적이다. 경차 스파크, 경상용차 다마스와 라보 등 소형차 단종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R&D 법인을 분할해 효율성을 높인 후 소형차 개발을 이어갈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