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회피 못한 대기업 SI업체, 보안·가격·물량 고민
입력 2018.11.12 07:00|수정 2018.11.13 09:12
    공정법 개정 시 LG CNS 등 규제 대상 포함
    보안 중요하지만 예외 대상 입증은 미지수
    내부에 두려면 철저한 공정 가격 산정해야
    외부에 지분 분산 시 계열사 물량 보장 문제
    • 올해 들어 많은 대기업들이 시스템통합(SI) 업체를 매각하거나 투자자를 유치해 ‘일감 몰아주기’ 문제를 피하려고 노력 중이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상태에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는 대기업들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예외에 해당하는 사업이라 주장하자니 공정위가 껄끄럽고,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자니 보안이 우려된다. 계속 가지고 있더라도 예전처럼 계열사로부터 높은 가격을 청구하긴 어려워졌다. 외부에 내놓을 땐 물량 보전을 두고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6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 행태를 다시 문제 삼았다. SI, 물류, 부동산관리, 광고회사 등 4가지 업종을 콕 집어 공정위의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SI 업체 지배구조 변화가 빠르게 이뤄졌다.

      SK㈜는 지난달 100% 자회사 SK인포섹을 포괄적주식교환 방식으로 SK텔레콤에 넘기기로 했다. GS그룹은 최근 GS ITM 지분 100%를 IMM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S&C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한 후에도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8월 한화시스템과 합병했다. 지난해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을 물적분할 한 롯데정보통신은 7월 증시에 입성했다.

      새로 고민을 안게 된 곳들도 있다.

      지난 8월 정부는 38년만에 공정거래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이들 기업이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도 포함하기로 하는 규정도 새로 담았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포 1년 후부터 시행된다.

      LG CNS는 ㈜LG가 지분 85%를 갖고 있다. 현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이 바뀌면 총수 일가 지분이 40%가 넘는 ㈜LG가 지분 50%가 넘는 SI 업체를 거느리게 돼 규제 대상이 된다. LG그룹 입장에선 LG CNS 지분율을 낮추거나, 회사를 물적분할 혹은 다른 계열사 아래로 붙여 손자회사로 만들 수도 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9월 코오롱베니트 지분 49%를 ㈜코오롱(지분율 51%)에 현물출자 하고, ㈜코오롱 신주를 받아갔다. 그러나 이 회장이 ㈜코오롱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코오롱베니트는 다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한번 조정이 필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코오롱 지분율을 낮출 수는 없기 때문에 코오롱베니트 지분을 50% 미만으로 맞춰야 할 가능성이 있다.

      CJ그룹은 CJ올리브네트웍스가 걸린다. 오너 일가가 44%, CJ㈜가 5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물론 법 개정 후에도 규제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물적분할 후 오너 일가의 지분이 없는 계열사에 넘길 수 있다. CJ㈜가 계속 거느린다면 오너 일가가 지분을 팔고 CJ㈜도 일부 지분을 덜어내야 한다. 올리브영 사업을 키워 내부거래 비중을 줄이거나 상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큰 그룹들의 SI 사업은 대부분 계열사의 전산부서를 떼어 모은 형태로 시작됐다. 그룹 전반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보안이 중요하다. 과거 대우정보시스템의 주인이 바뀌기도 했지만 이는 그룹이 와해됐기 때문이다. GS ITM처럼 경영권을 매각하는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최근 LG그룹이 외부에 LG CNS 비경영권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거론됐다. KKR등 해외 사모펀드가 후보로 언급됐다. 이에 LG그룹은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이다. SI 업체는 보안이 중요한 사업 특성상 예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문제의 소지가 있는 그룹들도 예외에 해당하길 바랄 수 있다.

      공정거래법은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의 불가피한 사유가 있으면 총수 일가가 보유한 회사와 거래가 많더라도 예외를 인정한다.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 공장 및 연구·개발시설 구축, 핵심기술의 개발 등이 보안성이 요구되는 거래에 속한다. 이는 개정 공정거래법에도 담겼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이를 근거로 관망세를 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외에 해당할 정도로 보안이 중요한 요소인지 공정위에 입증하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미 조치를 취한 다른 그룹들도 보안이 중요하긴 마찬가지였다.

      M&A 자문사 관계자는 “예를 들어 포스코ICT처럼 고로 온도나 원료 배합 등 업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민감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예외로 인정될 만 하지만 다른 곳들도 그 정도 데이터를 가졌는 지는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공정거래법 개정 취지를 감안하면 예외 사항에 대해서도 더 깐깐한 심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안의 중요성을 입증하기 어려움에도 SI 업체를 유지해야 한다면 서비스 가격을 철저히 객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은 정상적인 거래에서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조건이 아니거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없이 거래하는 경우를 ‘부당한 이익제공’으로 봐 문제 삼는다. 즉 계열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가격과 외부와 거래 시 받는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면 안 된다. SI 업체는 계열사로부터 제3자 거래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없다.

      이론적으로 이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다면 SI업체의 지분율이나 지배구조 변경 없이도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공정위는 줄기차게 총수일가의 SI업체 지분 매각을 압박하고 있다. 과거의 혐의를 벗기 위해선 실질적인 개선보다 형식적인 지분율 기준 준수가 더 중요한 상황이다.

      다른 계열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면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든 외부에 분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엔 새로 지분을 받게 될 주주를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투자자로선 적어도 지금까지의 계열사 매출 비중이나 가격 수준을 유지하길 바랄 가능성이 크다.

      M&A 자문사 관계자는 “SI 업체는 지배구조가 바뀌더라도 계열사 매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외부 투자자는 지금까지의 실적을 보장받길 바랄 것”이라며 “가격은 SI 업체가 예전처럼 비싸게 받는데 물량은 계열사들이 보장해야 하는 애매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