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혁신성장 실적', 거래소는 '상장 실적' 윈-윈
유동성 줄고 밸류에이션 떨어지는데 피해는 투자자만
문턱 낮아지며 '상식 밖' 바이오기업까지 상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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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의 유동성 장세가 끝나가며 증시 곳곳에서 잡음이 생기고 있다. 특히 과잉 유동성으로 인한 리스크온(risk-on;위험부담) 투자의 대표 주자격인 바이오주가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기술특례로 상장한 소형 바이오업체는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같은 대어급까지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한국거래소는 바이오기업 상장을 권장하는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는 상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국내 증시에 새로 상장했거나 상장예정인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20여곳에 달한다. 2010년 이후 최대 규모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 상장 통로로 주로 활용하는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 역시 올해 15건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중 11곳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이다.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상장이 크게 늘어난 것은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며 상장할만한 제조업 비상장사가 크게 줄어든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정부와 한국거래소의 적극적인 유치 움직임도 핵심 이유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한 증권사 상장 담당자는 "정부는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혁신기업을 자본시장의 테두리로 이끌었다는 생색을 낼 수 있고, 거래소는 당장 신규상장 실적이 늘어난다"며 "정책 입안자와 실행자 입장에서는 손해볼 일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외부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기술특례 외에 상장 주관사의 추천만으로 상장할 수 있는 성장성 특례상장 제도까지 도입했다. 지난 21일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성장성 특례상장 1호 기업인 셀리버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셀리버리 역시 바이오 신약개발 기업이다.
이 자리에서 최 위원장은 "제약 및 바이오기업의 상장유지 특례를 마련하겠다"며 "혁신기업이 보다 쉽게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제도를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거래소도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손을 잡는 등 적극적으로 발을 맞추고 있다. 금융업계에서 정부의 정책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글로벌 양적완화와 금리 인하를 통해 유동성이 끝없이 공급되는 시기에 마련됐다는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대표되는 유동성 회수 국면에선 바이오기업같은 성장기업이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당장 올초만 해도 80배에 육박하던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업종의 평균 주가순이익비율(PER)이 최근 40배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한미약품·셀트리온 등 대표 바이오기업들의 현 주가는 52주 최고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의 주가가 좋았던 건 실적이 뒷받침되기도 했지만, 넘치는 유동성이 밸류에이션을 밀어올린 부분이 더 컸다. 지금은 유동성이 줄어들고 있는 국면이며,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상장을 독려하는 건 '혁신성장'에 대한 책임을 자본시장에 미루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낮아진 문턱을 통해 '상식 밖'의 바이오기업들이 증시에 입성하고 있는 것도 이슈다. 가장 최근 기술특례를 통해 코스닥에 입성한 티앤알바이오팹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4억원에 영업손실이 40억원에 달했음에도 불구, 시가총액 1500억원 가치로 상장했다. 2022년에 155억원의 순이익을 낼 것이라는 추정치가 공모가의 근거가 됐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담당자는 "3D바이오프린팅의 장래성은 알겠지만, 이제 성형용 인공지지체품목허가를 받은 회사가 맞춤형 세포치료제 신약개발까지 논해서 당황스러웠다"며 "올해 100억원 수준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유화증권의 현 시가총액이 1500억원이다"라고 말했다. 티앤알바이오팹의 상장 당일 종가는 1만2500원으로 공모가(1만8000원) 대비 30% 급락했다.
상장을 독려하는 반대편에선 회계처리와 감리를 통해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부담을 주는 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판정을 받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절차에 들어가며 총 22조원, 소액주주 기준 4조7000억원의 자금이 꼼짝없이 묶여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의 투자 위험을 감안해 자본시장법상 반드시 공모물량의 20% 이상을 일반투자자들에게 의무 배정하도록 한 조항을 완화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넓게는 업종, 적어도 기술특례 상장기업에만큼은 전문투자자 위주로 공모 투자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견 운용사 펀드매니저 출신 한 전업투자자는 "미래가치 측정이 어려운 바이오기업은 더 강화된 기준으로 상장시키는 게 옳다"며 "대부분이 바이오업종인 기술특례 상장사 중 절반 이상은 현 주가가 공모가에 미달하고 있는 상황을 정책당국에서 엄중히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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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0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