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돌아 ELS? 실적 급한 증권사 발행 늘렸다...건전성 '뇌관'
입력 2018.12.21 07:00|수정 2018.12.24 08:08
    2년만에 주식형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 70조 재돌파
    자체 헤지 늘어난 상황에서 관리능력이 수익성 좌우할 듯
    관련인력 몸값 높아져…"김성락 전 전무 이직도 같은 맥락"
    • 국내 주식형 파생결합증권(ELS·ELB)의 발행 잔액이 2년만에 다시 70조원을 돌파했다. 저금리에 증시 약세로 투자할만한 상품이 마땅치 않은 자산시장의 상황과 실적 악화 위기에 놓인 증권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수익 극대화를 위해 증권사들이 자체 헤지(hedge;리스크 회피) 규모를 늘리며, '파생결합증권 관리 능력'이 내년 증권사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을 가를 척도가 됐다는 평가다. 관련 인력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1월말 기준 국내 주식형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은 70조5600억여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55조원 대비 27.7% 늘어난 규모다. 홍콩항셍기업금융지수(홍콩H지수) 폭락 쇼크로 ELS 발행이 급감하기 직전인 지난 2016년 7월 이후 2년 반만이다.

      증시가 신(新) 박스권에 갇히며 기초지수가 일정치 이상 내려가지 않으면 조기에 수익을 확정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 상품이 다시 각광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엔 증시가 대세 상승 추세를 타며 ELS보단 주식형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로 돈이 몰렸다. 변동성 장세는 무섭고, 2%대 상품이 주류인 예적금으론 만족할 수 없는 자금들이 다시 ELS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자금의 흐름은 증권사들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반짝 호황 장세가 지나고 기업금융(IB)과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위축되며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증권사들이 다시 ELS 판매에서 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메리츠종금증권이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파생결합증권 시장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지만, 올해 발행잔액 기준 '탑10' 증권사로 일거에 진입했다.

      11월말 기준 메리츠증권의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은 3조3000억여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49배 늘어났다. 핵심 수익원이었던 부동산 부문이 이전만큼 높은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자 파생결합증권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수익성을 위해 리스크 익스포저(노출)를 눈에 띄게 늘리고 있는 하나금융투자 역시 파생결합증권을 지난해 말 대비 1조6000억원 넘게 더 발행했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파생결합증권 발행과 우발채무 급증이 있다는 지적이다.

      키움증권 역시 눈에 띄게 파생결합증권 발행이 늘어난 증권사 중 하나다. 하반기들어 증시 침체로 인해 거래금액이 감소한데다, 주식담보대출 이자율 인하 등 이슈가 맞물리자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행을 늘린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사태로 안팎이 시끄러운 한화투자증권 역시 파생결합증권 발행 규모를 지난해 말 대비 두 배로 늘렸다.

      지난해 다소 낮아졌던 파생결합증권 자체 헤지 비중도 다시 50%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사가 파생결합증권 관련 운용을 직접 담당하는 자체 헤지는 수익성이 매우 높지만, 관리에 실패할 경우 곧바로 대규모 손실이 난다.

      키움증권의 경우 2012년 자체 헤지 과정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고 이후 상당기간 ELS 발행에 소극적이었고, 한화증권 역시 2016년 자체 헤지 실패로 2000억원대 손실을 봤다.

      파생결합증권 발행 증가는 내년 증권사 자산건전성에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미 신용평가업계에서는 돋보기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이 크게 늘어난 배경엔 상품의 조기 상환이 지연된 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말까지 ELS 조기 상환액은 4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조7000억원 대비 크게 줄었다.

      한국기업평가는 "9월말 기준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은 증권사 자기자본의 220%에 달하고 홍콩H지수 자율규제가 지난해 말 종료된 이후 다시 지수 쏠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자체 헤지 비중도 다시 상승하는 등 파생결합증권 관련 부담이 확대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관리 부담이 커짐에 따라 증권사 내 파생결합증권 운용 인력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김성락 한국투자증권 전 전무와 김연추 전 힌국투자증권 팀장의 '100억원 이직설'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김 전 전무와 그의 팀이 미래에셋대우로 이직해 12조원에 달하는 주식형 파생결합증권 관리만 잘 해줘도 연봉값은 하는 것"이라며 "2015년까지만 해도 4조원이 넘는 파생결합증권을 발행·운용했던 대신증권도 2017년말 관련 인력이 잇따라 퇴사한 이후 규모를 반 이하로 줄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