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방인 아니다"…현대차 이끄는 외국인 임원들
입력 2018.12.26 07:00|수정 2018.12.27 10:00
    R&D‧상품전략‧디자인 총괄, 外人 임원 3인방 선임
    조직개편에 인사까지, 비어만 사장 의중 상당수 반영
    정의선 체제 내 외국인 인사 목소리 더 커질 듯
    • 현대자동차그룹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임원수 감축을 추진했고, 주요 보직의 수장도 새사람으로 채웠다. 특히 '정의선의 남자'로 불리는 외국인 임원들이 조직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그룹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현대차의 사실상 실세로 불리던 김용환 부회장은 현대제철로 자리를 옮겼다. 연구개발의 핵심이던 권문식·양웅철 부회장은 고문으로 위촉되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현대차 연구개발의 양대 축이 떠난 자리는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 사장이 맡게 됐다. 연구개발 본부장으로 선임된 비어만 사장은 이제껏 고성능 차량 개발을 진두지휘 해왔다. BMW에서 고성능 차량 개발 총괄을 역임한 비어만 사장은 지난 2015년 현대차에 합류했고 고성능 차량 'N브랜드'와 제네시스 'G70' 개발을 주도했다. 현대차가 외국인 임원에 연구개발 총괄을 맡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연구개발을 비어만 사장이 책임진다면, 상품 전략은 토마스 쉬미에라(Thomas Schemera) 부사장이 맡는다. 당초 상품 전략 부문은 현대차 생산품질을 담당하던 여승동 사장이 맡고 있었으나 이번 정기 인사를 통해 여 사장이 고문으로 물러났고, 쉬미에라 부사장이 상품전략 본부장으로 새로 선임됐다.

      쉬미에라 부사장 역시 BMW에서 고성능 차량 M시리즈 북남미 사업을 총괄한 인물로 올해 3월 현대차에 합류했다. 이후 고성능차와 모터스포츠 사업,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현대차 고성능사업부장을 맡아왔다. 쉬미에라 부사장은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등 미래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선행상품 기획과 신기술 개발 방향성 정립 등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디자인 총괄은 2015년 현대차에 합류한 루크 동커볼케(Luc Donkerwolke) 부사장이 책임지고 있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아우디, 람보르기니, 벤틀리 등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고, 현대차에 합류한 이후부턴 제니시스 디자인 개발에 참여했다. 지난 10월 디자인최고책임자(CDO)로 임명되며 현대차 디자인 전반을 지휘하고 있다.

      현대차의 외국인 임원 영입은 지난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에 재직하던 당시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 사장을 영입해 K시리즈의 대표모델 K5를 선보였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로 자리를 옮긴 이후, 2015년부터 알버트 비어만 사장을 비롯해 10여명의 외국인 임원들을 영입하며 주요 책임자급 보직에 앉히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에서 활약했던 외국인 임원들을 대거 전진 배치하면서 현대차 조직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연구 조직에서 불협화음을 내던 권문식, 양웅철 부회장이 물러나고 외국인 사장이 새로 선임되면서 내부에선 경영 방식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알버트 비어만 사장과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은 정 부회장에게 직언(直言)할 수 인물로 꼽혀왔다. 이번 대대적인 인사발표와 조직개편 또한 두 외국인 임원의 의중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그룹 내 핵심 실세는 기존의 부회장, 사장 라인이 아니라 사실상 외국인 임원들로 볼 수 있다"며 "특히 비어만 사장이 기존 현대차 조직과 경영방식 등에 대해 불만을 많이 표현해 왔는데 이번에 연구 총괄을 맡게 되면서 연구소 조직과 본사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주요보직을 외국인 임원들에게 맡기면서 글로벌 브랜드로서 입지를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며 "외국인 임원들 대부분이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공들여 영입한 인사들인 만큼 정의선 체제 내에서 외국인 임원들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 가지 관심사는 또 한 명의 정의선 부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맨프레드 피츠제럴드(Manfred Fitzgerald) 부사장의 입지다. 피츠제럴드 부사장은 제네시스 사업부장을 맡아 정 부회장에 힘을 싣고 있지만, 비어만 사장과는 갈등 관계에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 정 부회장이 피츠제럴드 부사장의 계약 연장을 진행할 당시 비어만 사장은 재신임을 반대한 대표적인 인사로 전해진다. 향후 비어만 식 조직개편이 추진될 경우, 다소 부진한 제네시스 사업에 대한 문책도 가능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