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소규모 벤처기업에만 상장 문턱 낮아져
내년엔 공모물량 자율화·코너스톤 제도 논란 '예약'
-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유난히 제도의 외풍(外風)에 시달렸다. 잠재적 상장 가능 기업을 최대한 많이 상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던 이전 정부와는 달리, 이번 정부는 새로운 제도와 규제를 도입해 시장 활성화와 건전성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쫒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긍정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다. 공모주 규모는 지난해 대비 반 토막 났고, 제도가 시장을 교란한다는 볼멘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스닥 벤처펀드 제도 개편이다. 코스닥활성화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정책은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에게 공모주 30% 배정 우선권을 주는 게 핵심이었다.
시장 도입 한 달만에 2조원 규모의 자금이 쏠린 코스닥 벤처펀드는 2~3분기 공모주 시장을 교란한 주범으로 꼽힌다. 펀드들이 빠르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돈의 힘에 기댄 '베팅'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닥 벤처펀드 도입 직후인 5월부터 3개월간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14곳(스팩 제외) 중 8곳의 확정 공모가가 공모희망가 밴드 최상단보다도 더 위에서 결정됐다. 공모가 최상단으로 결정된 사례까지 합하면 11곳에 이른다. 지난해 상장한 50곳의 코스닥 기업 중 공모가가 밴드보다 높게 결정된 회사는 불과 6곳이었다.
왜곡된 가격은 급락을 불러왔다. 20일 기준 올해 5월 이후 상장한 신규 상장사 63곳 중 현재 주가가 공모가에 미치지 못하는 기업의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논란에서 촉발된 회계감리 선진화 정책 역시 '부수적 피해'를 낳았다. 현대오일뱅크, 카카오게임즈 등 올해 시장에서 대어(大漁)로 꼽히던 기업들이 감리에 발목이 잡혀 상장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기업의 회계 자율성을 보장한 국제회계기준(IFRS) 하에서, 상장기업에 대한 지정감사인 제도까지 운영하는데 감리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부정적이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칼'을 빼든 금융당국이 이대로 물러서진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신규 상장기업에 대한 감리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늦어도 이달 초 발표될 전망이었던 '회계 감리 선진화 방안'은 내부 논의가 길어지며 내년 초로 일정이 밀렸다.
정부가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며 기술특례 상장의 문턱은 더욱 낮아졌다. 올해 기술특례 신규 상장사는 제도 도입 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연간 20곳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 증권사 상장 담당자는 "대기업 상장은 시장 상황과 감리 이슈에 묶인 상황에서 기술특례 상장 쪽으로 무게가 많이 쏠린 건 사실"이라며 "내년에도 적자·소규모인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상장 문턱은 지속적으로 낮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이 같은 상황은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감리 선진화 외에도 ▲상장을 주관하는 증권사의 책임을 늘리는 대신 공모물량 배정에 자율권을 주는 방안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투자가 접촉을 허용하는 방안 등을 내년 '자본시장 혁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현행 공모 제도의 근간을 허물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코너스톤 인베스터(초석 투자자) 제도 도입 추진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특혜 논란과 자본시장법 개정 가능 여부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상장 담당 임원은 "시장을 선진화·활성화한다는 명분 아래 새 제도와 규제가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다"며 "정부가 앞장서 시장 불확실성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8년 12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