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19년만의 총파업, 노조 불만누적-경영진 리더십 부족 합작품
입력 2019.01.08 14:24|수정 2019.01.09 09:56
    밤샘 협상에도 총파업 못 막아...노사 극한 대립
    갈등 있었어도 한발씩 양보하던 전년과는 대비돼
    • KB국민은행이 지난 2000년 국민은행-주택은행 통합 반대 이후 19년만에 처음으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일부 마찰을 빚긴 했지만 결국 타결된 지난 3년간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과는 달리, 노사가 '극한 대립'에 들어간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단순하게 '성과급'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수년간 쌓인 노동조합의 불만과 존재감 없는 허인 행장의 리더십 부족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올해 파행 키워드, 임금피크제 일원화와 페이밴드

      일단 표면상 드러난 올해 KB국민은행 임단협의 핵심 쟁점은 임금피크제 시기와 페이밴드, 그리고 2차 정규직(기존 무기계약직, 주로 LO급 사무직 직원) 처우 개선에 대한 시각차이다.

      협상 초기 노조는 통상 임금의 30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고, 은행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를 넘기면 지급하겠다고 맞섰다. 이틀간 새벽까지 이어진 마라톤 협상 끝에 은행이 시간외 수당 포함 300%를 제시하면서 타결의 가닥이 잡히는 듯 했다.

      다만 은행은 성과급을 300%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임금피크제 도달 시기 일원화와 페이밴드 논의 착수를 내걸었다. 노조가 '조건부 논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회담장을 박차고 일어서며 결국 8일 총파업까지 사태가 이어진 것이다.

    • 현재 국민은행은 부장·지점장급은 만 55세 생일 다음달에, 팀장 이하급은 만 55세 생일 다음해 1월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된다. 은행은 이를 일원화하자고 제시했고, 노조는 '일괄 1년 유예'라는 산별노조 합의를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협상 내내 평행선을 그렸다.

      페이밴드 역시 쟁점이었다. 페이밴드는 일정기간 승진을 못하면 호봉이 더이상 상승하지 않는 제도다. 현재 신한은행이 전면 도입했고, 우리은행은 차장 이상에게 적용 중이다. KEB하나은행은 도입하지 않았고, KB국민은행은 2014년 11월 이후 입사한 신입직원에게만 적용된다. 은행은 전면 도입을, 노조는 전면 철회를 주장했다.

      2차 정규직에 대한 논의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지난해 2차 정규직 승진자 수를 늘리겠다는 은행의 양보를 받아낸 노조는 올해 2차 정규직 근속연수의 호봉 인정을 주장했다. '인사 업무는 고유의 권한'이라며 난색을 표하던 은행은 추후 개선안을 마련하자고 제시했지만,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 그간 잘 양보해오다…올해엔 배수진 친 양측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은행과 노조는 임단협 과정에서 매년 마찰을 빚긴 했지만, 결국 한발씩 양보하며 타결안을 만들어냈다.

      임금피크제 적용 후 5년간 급여를 265%로 조정한 2017년 임단협이 대표적이다. 은행은 250%, 노조는 300%를 제시했다가 서로 절충한 것이다. 2016년 3000명 중 불과 80여명이 승진했던 2차 정규직도 임단협 타결 후인 지난해엔 승진자 수가 크게 늘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올해 임단협에서 쟁점이 된 안건들이 '충분히 서로 양보할 수 있었던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19년만의 총파업에 이를 정도로 절체절명한 쟁점들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은행과 노조는 협상을 앞두고 배수진을 쳤다. 은행은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임원 54명의 사표를 받았고, 노조는 사전협상에 나선 류제강 수석부위원장이 "우리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면 위원장이 테이블에 나오지조차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런 극한 대립은 결국 양측의 '불만 누적'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평가다.

      ◇ 노조 선거 개입, 2017년 임단협 대립 등 서로 불만 누적된 듯

      이번 임단협과 총파업은 KB국민은행 내 3개 노조 중 핵심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한국노총 계열)이 이끌고 있다. KB국민은행지부는 1만6000여명의 직원 중 1만4000여명을 조합원으로 확보하고 있다. 이 노조의 박홍배 노조위원장은 금융권 노조위원장 중 대표적인 강성인사로 꼽힌다.

      박 위원장은 지난 2016년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재선됐다. 이 당시 KB국민은행은 박 위원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직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사건은 소송전으로 번졌고, 당시 행장을 겸임하던 윤종규 회장이 "모두 저의 불찰과 부족함 때문"이라며 사실상 사과하기까지 했다. 인사 담당 일부 임직원이 자진 사퇴했다.

      지난해 초에도 노조의 KB금융지주 사외이사 추천을 두고 신경전이 있었다.

      노조가 박 위원장 주도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천한 데 대해, 지주에서 주주총회 서류를 통해 '현행 사외이사 관리 및 검증제도를 거치지 않은 후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공식적으로 반대를 권고했다. 당시 노조는 "공식적으로 주주들에게 반대를 권유하는 것은 적대적인 처사"라며 반발했다.

      은행도 감정이 상하긴 마찬가지라는 평가다. 허인 행장은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노조와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2017년 11월 KB국민은행지부 노조 창립 13주년 행사에 이례적으로 직접 참여해 박홍배 위원장과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당시 임단협은 중앙노동위원회 쟁의조정 신청까지 가는 파국 끝에 지난해 2월에야 가까스로 체결됐다. 다른 은행들은 이미 전년 10월 이전에 일찌감치 임단협을 마친 상황이었다. 이 과정에서 허 행장이 노조에 상당부분 실망했다는 평가다.

      금융권에서는 허 행장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미 이전부터 '리더십을 찾아볼 수 없다'는 평가가 제기되던 와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19년만의 총파업은 노조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결국 허 행장이 총파업을 철회할만한 '명분'조차 노조에게 쥐어주지 못한 게 사실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총파업을 두고 국민은행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찬반투표에는 찬성률이 95%를 훌쩍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