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증권, 발행어음 '수난''…시장 선점'이 '본보기 처벌'로
입력 2019.01.14 07:00|수정 2019.01.15 08:51
    법률검토 거쳤지만…'개척자 리스크' 떠안아
    경쟁 심해지며 마진 압박…투자할만한 곳도 줄듯
    • 한국투자증권이 '최초 발행'한 발행어음으로 인해 '최초 처벌'을 받을 상황에 놓였다. 편법과 불법의 기로에서 '개척자의 리스크'를 떠안아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발행어음을 두고 '내우외환'에 시달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적정 마진을 챙길만한 투자 상품이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자기검열'과 싸워야 하고, 외부적으로는 치열해지는 경쟁을 헤쳐나가야 할 상황이기 때문.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전날 오후 2시부터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조달 자금 부정 사용에 대한 제재 수준을 논의했다. 이날 밤 늦게까지 이어진 위원회는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제재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는 것 자체가 한국투자증권에겐 부정적인 상황이다. 평판에 대한 우려가 장기화하고 있어서다. 발행어음 징계 이슈가 불거진 12월 초 이후 한국금융지주 주가는 15% 하락했다.

      재제심에서 금감원이 보여준 제재 의지는 매우 강했다는 후문이다. 총수익스왑(TRS) 자체가 법적으로 회색지대에 위치해 있음에도 '실질'로 볼때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법리검토를 통해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출을 감행했지만, 감독당국의 해석은 달랐던 셈이다.

      이번 제재심은 발행 초기 시장 선점과 인기몰이에 성공했지만 불과 1년만에 '경영 리스크'로 부각한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의 입지를 상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연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잔액은 3조7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출시 한 달만에 9000억원을 발행한 이후, 꾸준히 발행을 늘렸다.

      다만 2017년말 1조원, 2018년말 4조원을 발행하겠다던 초기 발행 목표와 비교하면 조금씩 미달하는 모습이다. 발행 규모 증가 속도도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시장 추정치 기준 지난 4분기 발행어음 잔액 증가량은 3000억원 안팎 수준이다.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20%대에서 한 자릿 수로 뚝 떨어졌다.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데다, NH투자증권이라는 경쟁자가 등장했다는 시장 현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평가다. 스스로 발행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업 제도 도입 당시 정부가 10%로 제한했던 부동산금융 투자 비중을 '30% 이상으로 늘려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던 증권사 중 하나였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문 경쟁력을 바탕으로 마진을 늘려나가려는 포석이었다.

      현재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 중 부동산금융 투자 비중은 20% 안팎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부터 서서히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돈 될 만한' PF 사업장이 줄어들며 자금 집행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게 안팎의 시선이다.

      발행어음 자산의 상당부분은 A급 이하의 회사채에 투자하고 있다. 채권 중심으로 운용하다보니 시장에서 추정하는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마진율은 150~180bp(1.5~1.8%) 정도다. 발행어음 도입 초기 200bp 안팎의 마진을 기대했던 것과 비교하면 다소 낮은 수준이다.

      리스크온(Risk-On) 투자가 확대됐던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와는 달리, 올해엔 A급, BBB급 회사채 발행 규모가 전년 대비 각각 15%가량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자금으로 확보할만한 회사채 물량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경쟁으로 인해 마진율은 더욱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 발행어음업에 진출한 NH투자증권은 연 2.5% 수익률의 적립식 발행어음 상품을 내놨다. 2.3%의 금리를 주던 한국투자증권 발행어음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NH투자증권은 적립식 발행어음 계좌를 바탕으로 불과 3개월만에 1조3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끌어모았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똑같은 적립식 발행어음 상품을 출시했다. 금리는 연 3.0%로 크게 높여 잡았다. 이탈하는 고객을 막고자 하는 자구책이지만, 투자자에게 수익을 많이 주면 줄수록 한국투자증권이 가져가는 마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하반기 3000만명의 모기업 고객군을 보유한 KB증권까지 발행어음 시장에 뛰어들면 금리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KB증권은 지난해 말 최고경영진을 전면 교체하고 발행어음업 인가 신청을 냈다.

      이번 제재심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투자증권은 향후 발행어음 자금 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할만한 자산 확보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고마진이 기대되더라도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는 투자는 꺼릴 수 밖에 없어진 까닭이다.

      특수목적회사(SPC)인 키스아이비제16차가 TRS 계약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부터 보장받은 수익률은 5% 안팎일 거라는 게 시장의 추정치다. 조달 금리가 2.3% 수준임을 감안하면, 기대할 수 있는 마진이 270bp에 달한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TRS를 통한 안정적인 고마진, SK실트론의 기업공개 등 추후 추가 거래 가능성, SK그룹과의 관계 증진 등을 고려하면 투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이로 인해 '반면교사'가 된 입장에선 비슷한 구조의 거래에 당분간 손대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재에 대한 책임 소재가 한국투자증권의 인사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도 이슈다.

      한국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운용은 종합금융투자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 종합금융담당 전태욱 상무는 2017년 12월 부임했으며, 이전까지는 증권 기획조정실장을 거친 김신열 이사가 실장을 맡아왔다.

      종합금융투자실은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제재가 확정되면 2017년 당시 대표이사였던 유상호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은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거란 평가다. 실제로 유 부회장은 10일 열린 제재심에 직접 참석해 전후 사정을 소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