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존재감 사라진 산업은행…회장은 독려하지만 환경은 부정적
입력 2019.01.24 07:00|수정 2019.01.25 09:24
    자본시장 강자였으나 민영화 철회 후 내리막
    경쟁 강도 점점 심화…기능 개편 효과도 불투명
    • 산업은행은 최근 몇 년간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찾기 어려웠다. 올해 다시 힘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시장 여건은 비우호적이다. 국내에선 경쟁사들이 구축한 영역이 공고하고 해외에선 강점이 있지만 조직을 강화하기 쉽지 않다.

      자본시장 관련 일부 기능을 통합·조정했는데 어느 정도의 상승 효과가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대우건설 등 관리회사 가치 개선과 구조조정 기업 정리 고민은 이어질 전망이다.

      산업은행은 오랜 기간 자금력과 신용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자본시장 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2013년 민영화 작업이 중단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의식적으로 민간 금융시장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영역을 줄이기 시작했다. 시너지 효과를 내던 대우증권도 팔았다. 입지 축소가 가속화했다.

      산업은행은 2017년만 해도 M&A 재무자문 15위, 인수금융 주관 9위, 채권자본시장(DCM) 전체 주관 8위 등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는 재무자문 20위권 밖으로, 인수금융과 DCM 전체 주관은 각각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잡음을 피하려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는 평가와 수 년간 역량이 약화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엇갈렸다.

      산업은행은 올해 자본시장에서 다시 힘을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동걸 회장이 ‘자본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라’고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도 정책금융기관의 자본시장 내 역할을 고민해줄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미 경쟁사들 때문에 자산을 쌓기 쉽지 않다. 시중은행들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산업은행의 금리 조건을 당해내기 어렵다고 푸념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산금채 금리 부담은 여전한데 시중은행은 저금리무금리성 자금을 대규모로 갖고 있어 경쟁하기 쉽지 않다. 증권사들은 영역을 불문하고 돈이 된다 싶으면 과감한 조건으로 거래를 선점한다. 감사 부담이 있는 산업은행이 따르기 어렵다.

      해외 시장에서는 여전히 국내 금융사 대비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각국에 네트워크를 갖춰 놓았고 국가 수준의 신용등급도 든든하다. 외화 조달 면에서 특히 유리하다. 다른 금융사처럼 지난 수년간 산업은행의 화두 역시 ‘글로벌’이었다. 문제는 해외에 얼마나 힘을 실을 수 있느냐다.

      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은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 자금이 많아 산업은행보다도 금리 우위를 갖게 됐다”며 “상대적으로 강점이 있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하지만 조직이나 인력을 확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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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사진. 과거 산업은행 해외 성과 자료

      M&A 자문에선 여느 국내 자문사들과 사정이 비슷하다. 국내에선 먹거리가 많지 않다. 지난해 관여한 거래도 금호타이어, STX, 한국GM 등 제한적이었다. 해외에서 경쟁하자니 자문 분야에선 글로벌 강자들이 수두룩하다. 지난해 대웅제약의 헤일로파마 인수 자문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결국 다른 곳에 공을 빼앗기기도 했다.

      산업은행 M&A컨설팅실은 올해 첫 업무로 동부제철 매각을 맡게 됐다. 사업성이 좋지 않아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 매각이 검토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부동산이 있고 항구와 가깝다’는 이상의 강점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M&A와 부수되는 인수금융 부문에서도 활로를 찾기 쉽지 않다. 지난해 주요 사모펀드(PEF)들과 금융사간 공생 관계를 넘을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으나 틈새가 마땅치 않았다는 평가다.

      산업은행은 최근 자본시장 관련 조직 체계를 손 봤다. 자본시장부문 기능 중 일부를 기업금융부문 아래 신설한 네트워크금융단으로 옮긴다. 인수금융 기능과 신디케이션 업무가 이전된다.

      자본시장부문에선 M&A 자문에 부수된 인수금융은 계속 할 수 있지만 그나마 있던 먹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이익 목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LD디스플레이의 8000억원 규모 신디케이티드론을 공동 주선하기도 했다.

      프로젝트금융(PF) 부문에선 그나마 명맥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수 년간 해외에서 공을 들여왔고 성과를 낸 영역이기도 하다. 과거 PF 본부장을 역임했던 임맹호 부행장이 올해 자본시장부문을 맡게 됐다.

      산업은행의 사모펀드(PEF) 활동도 크게 줄었다.

      몇 해 전부터 PEF 분야에서 상업성을 강조하기 시작, 주로 기업재무안정 PEF를 결성해 삼표시멘트, 동부특수강 등에 투자했다. 지난해 메자닌 투자용으로 1500억원 규모 케이디비중소중견메자닌 PEF를 결성하기도 했다. 다른 기관 자금까지 끌어들여 진정한 PEF 사모펀드 영역으로 진출하려면 좋은 회수 실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올해 대우건설, KDB생명 매각 등 부담스러운 이벤트가 예고돼 있지 않은 상황.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매각을 위해 200곳 가까운 후보들을 접촉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동걸 회장은 두 회사를 급히 매각하기보다는 시장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