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밖 흥행 롯데 금융사 매각…귀한 매물(?)에 드라이파우더 소진 필요
입력 2019.02.28 07:00|수정 2019.02.27 17:11
    업황 침체 속에서도 주요 SI·FI 참여
    흔치 않은 우량 금융사 인수 기회
    하나·한화, 실적 개선·사업 확대 꾀해
    대형 PEF, 드라이파우더 소진 나서
    • 롯데그룹 금융회사 M&A는 조명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뒤로 한 채 순항하고 있다. 몇 남지 않은 금융사 매물이라는 희소성이 흥행에 불을 댕겼다. 금융지주들의 실적 경쟁에 몰린 하나금융지주나 금융사업 확장을 노리는 한화그룹으로서는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덩치 키우기'용 국내 매물에 해당된다.

      대형 사모펀드(PEF)들은 드라이파우더(미소진 투자금)를 활용을 감안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또 롯데 금융사들은 그룹과 연계물량(Captive)이 유지되면 안정적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재계 5위 그룹과의 네트워크 형성이라는 부수 효과도 기대된다.

      롯데그룹은 지난 15일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본입찰 적격후보(숏리스트)를 결정했다. 롯데카드는 하나금융그룹과 한화그룹,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 PE가 롯데손해보험은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JKL파트너스, 대만 푸본금융그룹 등이 선정됐다. 4월 초 본입찰을 거칠 예정이다.

      롯데그룹 내부적으로는 썩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 흥행되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것. 하지만 롯데 내부의 평가일뿐 업황 악화와 규제 강화 등 부담으로 외면을 받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매각은 초기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상황이다.

      ◇실적 경쟁 '하나'ㆍ승계 고민 '한화'ㆍ국내 확장 '푸본'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은 업황 전반의 침체에선 자유롭기 어렵지만 개별 회사의 경쟁력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수년간 대형 금융사 매물은 대부분 손바뀜이 일어났다. 두 회사처럼 안정적인 곳을 인수할 기회를 찾기 어렵다. 수요와 공급 법칙 덕을 봤다.

      금융사 라이선스 프리미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롯데그룹은 우량 금융사를 한꺼번에 인수할 기회라는 점을 강조해 왔다.

      하나금융은 내부 통합 작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실적 경쟁에 뛰어들었다. 롯데카드를 인수하면 하나카드와 합해 업계 2위권 업체로 뛰어오른다. 700만 명이 넘는 고객 데이터도 '관련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흡수할 수 있다. 매년 1000억원 내외의 순이익이 더해져도 KB와 신한을 위협하긴 어렵겠지만 이만한 기회도 흔치 않다.

      한화그룹은 처음엔 관심이 많지 않은 듯 몸을 낮췄으나 막상 M&A가 본격화하자 순식간에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렸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와 관련된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달 김 회장의 집행유예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금융사 대주주 적격성 심사 시 불안 요소도 사라졌다. 한화그룹은 과거에도 꾸준히 롯데그룹과 빅딜 가능성이 거론되곤 했다.

      대만 푸본그룹은 꾸준히 국내 금융시장에 눈독을 들여왔다.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비용 증가 가능성에도 불구, 기회가 날 때마다 관심을 가졌다. 처음 현대라이프생명(현 푸본현대생명)에 투자할 때부터 손해보험 인수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생명보험 안정화가 시급한 상황이라 단순히 손해보험사를 살피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평가도 있다.

      ◇대형 PEF 대거 참여…'딜도 없는데 이만한 매물도 드물다' 평가

      이번 거래엔 손 꼽히는 PEF 운용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모두 막대한 자금력이 있고 기업 가치를 끌어 올리는 데 강점이 있는 곳들이다. 금융사 투자 포트폴리오도 많다.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는 카드와 손해보험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패키지 인수 시 혜택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각각 금융사의 매력을 보고 뛰어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드라이파우더(Dry Powerㆍ미소진 자금)를 소진할 기회이기도 하다. M&A 자체가 뜸해진 상황이라 운용사들은 수익률보다 자금 소진이 더 급해졌다.

      MBK파트너스는 2016년 41억달러 규모 4호펀드를 결성했고, 한앤컴퍼니와 IMM PE는 조단위 블라인드펀드 결성 작업을 진행 중이다. JKL파트너스는 작년 6766억원 규모 펀드 결성 후 경쟁입찰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이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수준에 팔린다면 2조원대 거래가 될 수도 있다. 일부 소형 PEF 운용사들 역시 관심을 보였으나 대형 운용사들이 움직이자 일찌감치 발을 빼기도 했다.

      두 금융회사의 투자처로써 매력도 없지는 않다.

      롯데카드는 전업계 카드사로 카드 발급부터 가맹 모집까지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갖춰진 시스템을 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PEF로서는 인수 후 추가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롯데그룹과 관계와 물량확보가 유지된다면 많지는 않아도 안정적인 수익이 유지될 것으로 본 후보도 있었다.

      롯데손해보험은 PEF가 꾸리기 더 용이한 대상으로 꼽힌다. 전체 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퇴직연금 관련 자산이다. 유치 경쟁이 격화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수위권의 브랜드 가치와 운용 능력을 쌓았다. 과거 미국 사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보다도 우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큰 돈은 못 벌어도 들어온 현금은 잘 지키는 ‘유통 DNA’가 강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잘 관리한 후 금융지주에 매각했던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

      재계 5위 그룹과 관계를 맺는 무형의 이익도 기대할 만 하다. PEF 운용사들은 커가는 자금력만큼 대기업과 관계 형성이 중요해졌다. 이번에 롯데그룹의 금액 눈높이를 맞춰주거나 원하는 조건을 수용할 경우 사업 파트너로서 지위를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 롯데그룹 경영전략실의 첫 과제라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사실 이번 금융사 인수 과정에서도 롯데와의 관계 유지는 전체요건이다. 일례로 계열사 고객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롯데카드는 그룹을 떼면 독자 기업 가치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롯데그룹과 금융회사를 단절시키기 위한 거래인데다 법적인 문제로 계약서상 명시적으로 물량을 보장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거래 관계자는 “롯데손해보험은 보험회사라는 부담은 있지만 자산들이 깔끔하고 그룹 캡티브 비중도 절대적이지 않다”며 “롯데카드는 기존 제휴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지만 롯데그룹은 되도록 지분을 남겨 두지 않을 생각이라 어떻게 관계를 맺을 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