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적정' 의견 받아냈지만...신용등급 유지는 '물음표'
입력 2019.03.27 07:00|수정 2019.03.28 10:58
    신용평가사 "'적정 의견=등급 유지' 아니다"
    BBB-에서 한 단계 떨어지면 투기등급
    장기차입금·ABS 조기상환 트리거 발동하면 1.4조 빚폭탄
    "유동성 위기는 '여전'…신뢰도 저하에 자본시장 접근성 '뚝'"
    • 아시아나항공은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보고서 '적정' 의견을 받았지만, 현재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이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회계법인의 '적정 의견'과 '등급 유지'를 별개로 고려하며, 회사의 사업적 재무적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자본시장에서 떨어진 신뢰도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른 자금조달의 차질도 불가피하다는 평가다.

      아시아나항공의 외부감사법인 삼일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을 발표하자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무보증회사채와 ABS의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등재했다. 회사는 삼일회계법인에 재감사를 신청, 26일 감사보고서 '적정'의견을 받아냈다. 한정 의견 감사보고서 보다 영업이익 감소폭은 더 커졌고, 순손실도 늘었다. 회사는 신용등급 강등을 경고한 신용평가사들과는 협의를 통해 일단 '등급 하향'만큼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 ◇ 신용등급 턱걸이, 한 단계 떨어지면 1.4조 조기상환 해야

      현재 BBB-급인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은 한 단계만 더 떨어지면 '투기등급'으로 분류된다.

      회사채 신용등급에 상환 조건이 연계돼 있는 차입금은 은행으로부터 빌린 장기차입금과 미래의 예상 매출을 기반으로 한 ABS 등이다. 지난해 말 기준 회사의 장기차입금은 약 2580억원, ABS 잔액은 약 1조1417억원이다. 회사는 올해 장기차입금 2365억원, ABS 4557억원을 상환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은행들의 신용공여가 제공되지 않은 ABS의 신용등급은 BBB+로 아시아나항공의 자체 신용등급 BBB-보다 2노치(Notch) 높다. 기초자산은 국내외 여객 및 화물의 매출채권이다. 매출 안정성이 뛰어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 증권사들이 총액인수 했고, 국내 기관 및 개인투자자들에게 재판매 됐다.

      신용등급이 BB+로 떨어지면 장기차입금과 발행한 ABS 전부에 대해 조기상환 트리거(trigger)가 발동한다. 트리거가 발동하면 회사는 해당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야 한다. 은행들의 차입금은 각 기관들이 협의를 통해 조건 및 상환 스케줄을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ABS는 남아있는 ABS가 모두 상환될 때까지 향후 발생하는 매출채권이 상환 재원으로 쓰인다.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1000%가 넘을 경우엔 발행한 회사채의 상환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연결기준 부채비율은 625%, 개별기준으로는 721%다. 트리거 조항이 발동되기까지는 여유가 있어 위험성이 크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하지만 회사채 이외에 차입금에서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발생할 경우엔 무보증회사채의 기한이익도 상실한다. 신용등급에 하락에 따라 회사채도 상환해야 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야 하는 상황까지는 아직 대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신용등급이 떨어져 트리거가 발동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면 추가적인 자금조달이 사실상 불가능해 재무상황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삼일회계법인 '적정' 의견 받아도 신용등급 유지 '미지수'

      표면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신용등급 강등 위기에 놓인 것은 삼일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감사보고서 의견이 '적정'으로 전환된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지금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며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일단 신용평가사들은 회사측이 제시한 기존의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사업적으로 눈에 띄는 성장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무부담은 여전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을 워치리스트(Watch list)에 등재한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감사보고서 적정 의견을 냈다고 해서 곧바로 워치리스트에서 배제하거나, 현재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며 ▲한정 의견에서 적정 의견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고려한 요소들 ▲잠정실적에서부터 적정 감사보고서까지 변화한 재무적 수치 ▲향후 사업적·재무적 안정성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신용평가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다.

      결국 신용등급 강등 위기가 삼일회계법인이 '한정' 의견을 내면서 촉발되긴 했으나, '적정' 의견이 곧 '신용등급 유지'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삼일회계법인은 아시아나항공 감사보고서 한정의견의 근거로 ▲운용리스항공기의 정비의무와 관련한 충당부채 ▲마일리지 연수익의 인식 및 측정 ▲2018년 취득한 관계기업주식의 공정가치 평가 등에 대해 적합한 감사 증거를 입수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삼일회계법인은 '적정' 의견을 내면서 한정 의견 근거들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최종 실적은 당초 예상치 보다 크게 떨어지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신용등급 강등이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도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특성상 정치적인 상황은 무시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박삼구 회장이 집권한 이후 그룹은 수 차례 유동성 위기에도 불구하고,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며 위기를 넘겨왔다. 그룹은 작아졌지만, 아시아나항공만큼은 지켜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유동성 위기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평가다. 아시아나항공과 삼일회계법인은 공고했던 기업과 감사인의 관계가 보다 냉정해 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삼일회계법인이 앞장서자 신용평가사들도 기다렸다는 듯 아시아나항공에 칼을 대기 시작했다. 이는 재무제표의 회계처리 문제를 떠나서 아시아나항공의 신뢰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미 회사가 추진하던 올해 두 번째 영구채 발행은 사실상 중단됐다. 아시아나항공의 향후 자본시장에서 활동이 크게 위축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