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은 되고 조양호는 안되고…외국인투자자 '호불호'에 갈린 주총
입력 2019.03.28 07:00|수정 2019.03.29 09:59
    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경영권 상실
    최태원 회장, 무난히 SK㈜ 이사 재선임
    경영 방식도 '글로벌 스탠더드'가 유리
    “외국인 투자자 손에 사실상 달려”
    • SK그룹은 웃고, 한진그룹은 울었다.

      국민연금공단이 나란히 이사선임을 반대했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무난히 SK㈜ 사내이사에 재선임 됐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 경영권을 상실했다. 대주주의 지분율과 소액주주의 영향력 등 나란히 비교하긴 어렵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임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결국 좌절됐다.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지 20년만이다.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주주 손에 의해 물러나게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항공업계 업황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은 대한항공 주주총회에 이목을 쏠리게 했다. 대한항공 지분 11.56%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공단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고민이 깊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는 25일 개별 분과를 통해 대한항공 주총 안건을 심의했지만 위원 간 이견이 커 결론내지 못했다. 그리곤 26일 밤 전체 회의를 통해 합의된 결과를 냈다. 수탁자전문위원 10명 중 반대 6표, 찬성 4표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하기로 한 것이다.

      수탁위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 회장은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국민연금 수탁위는 같은 이유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반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무난히 사내이사로 재선임 됐다. 국민연금이 반대표 행사를 예고했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대비된다. SK㈜의 지분율 구성을 살펴보면 사실상 안건 부결은 불가능했다는 평가다. 최 회장 측 지분은 본인 지분(18.44%)과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0.86%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8.34%로 3대 주주다.

      그리고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선택이 결정적이었다.

      주총 전부터 외국인 투자자들은 조양호 회장의 연임 '반대'를 외쳤다. 플로리다연금과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 세 곳의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의결권행사 사전 공시를 통해 반대 의사를 내놨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도 반대 의견을 주주들에게 권고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장서자 국민연금도 부담을 한결 덜어낼 수 있었다는 평가다.

      국내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즉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대한 안팎의 압력이 커진 상황에서 대한항공 경영상의 조양호 회장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해외 연기금들이 모두 반대표를 던진 상황에서 국민연금만 그 반대 의견을 내는 것 역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SK㈜는 반대 경우다. 최 회장은 국민연금의 반대표에도 불구하고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 모두가 찬성표를 던졌다. 외국인 투자자, 소액주주 대부분 모두 최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대한항공 주총 영향을 불식시켰다.

      여기에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최태원 회장의 든든한 우군임을 자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 환경 변화 속에서 최 회장은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찾고 있고,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주주친화경영을 선언해 CEO로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차후에도 외국인 투자자 지분이 높은 재벌 그룹의 오너 경영인은 외국인 투자자들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드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사실 올해 주총이 큰 주목을 받은 것도 현대자동차그룹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대결에서 시작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식 변화 때문"이라며 "최태원 회장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룹의 비전을 보여준 반면 조양호 회장은 상대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과의 관계 개선이 미흡했고, 특히 갑질 논란에서 시작된 여론 악화와 그에 미흡한 대응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변심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