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도 성역 아니네"…김앤장 압수수색 두고 속내 복잡한 로펌들
입력 2019.04.02 07:00|수정 2019.04.04 09:45
    검찰, 김앤장 압수수색 돌입
    디지털 포렌식 팀 '주목'…김앤장 압도적 국내 1위 분야로 꼽혀
    포렌식 '공세' 강화하는 당국…법조계 "방어권 위협"
    경쟁 로펌들 주시 중…경쟁사 수혜? vs. 전체 산업 위축
    • “수사기관이 일종의 ‘고해성사’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전례 없는 일인데…사건이 사건인지라 ‘적폐’로 몰릴까 부담되기도 하고”(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

      올 초 검찰이 김앤장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이를 지켜본 로펌업계의 속내가 복잡하다. 민감한 정보가 많은 ‘디지털포렌식(Digital Forensic)’분야가 직접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나아가 법무법인의 수익성까지 해칠 수 있는 사안이라 로펌 공동 대응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자칫 여론을 거스르거나 정부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대형로펌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은 지난 2월. '가습기 메이트' 판매를 맡은 애경산업 수사 과정에서 법률 대리를 맡은 김앤장이 회사 내부 자료를 보관 중이란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이번 사건의 핵심 증거인 ‘독성 실험’ 관련 자료를 애경산업에서 확보하지 못했는데, 관련 자료가 포렌식 과정에서 김앤장에 남아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김앤장도 고객인 애경 측 의사를 확인한 뒤 임의 제출 방식으로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계기로 법조계에서는 그간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이 최근 보편화됐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2016년 롯데그룹 탈세의혹 과정에선 법무법인 율촌이 대상이 됐다. 지난해 11월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 농단’ 수사 과정에서 김앤장 소속 변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받았다.

      동시에 압수수색 방식도 보다 거칠어지는 모습이다. 과거에는 검찰이든 로펌이든 크게는 모두 법조계로 묶이기 때문에 마찰은 되도록 피해 왔다. 즉 로펌에 자료를 요청하고 내어주는 자료만 받아서 나오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직접 목표를 설정한 후 직접 찾아가 자료를 확보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법조계에선 로펌이 압수수색의 대상이 될 경우,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 방어권 행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란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일단 의뢰인에 대한 비밀유지의무(변호사법 제26조)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

      특히 이번엔 김앤장 내 디지털포렌식 분야가 목표물이 되면서 법조계의 고민이 더 깊어지고있다.

      로펌의 '디지털포렌식팀'은 자체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PC, 서버, 스마트폰 등을 통한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고 분석하는 업무를 맡는다. 특히 사정기관의 압수수색을 앞둔 기업들의 선제적인 내부조사에 활용하거나, 영업 기밀 보호 측면에서 포렌식을 활용하기도 한다. 로펌들 사이에서는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대상으로 한 새 먹거리로 꼽혀 왔다.

      최근 들어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일선 수사기관의 활용 움직임이 강해지며 포렌식 부문은 더 주목받았다. 이제는 경찰·검찰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관세청 심지어 농수산물 품질관리팀에서도 자체적으로 포렌식 팀을 꾸리거나 준비 중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7년 포렌식 팀을 신설한 이후, 인력증원계획 80여명 중 17명 가량을 포렌식 분야 엔지니어로 뽑는 등 인력 확충에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다보니 로펌 포렌식팀은 '방어'를 담당하며 전선 최일선에 나서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등을 통해 디지털 증거를 확보해 갔을 때 자료를 복사(Imaging) 해 방어 논리를 세우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이른바 기업들에게는 '무기의 평등'을 가져올 최후의 수단인 셈이다. 하지만 검찰의 로펌 포렌식팀 압수수색은 이 방어도구조차 무력화시킨 양상이 됐다.

      각 로펌들의 속내는 엇갈린다.

      일단 이 사안은 김앤장 한 곳의 문제가 아닌 로펌업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안인 만큼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2016년 검찰이 법무법인 율촌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에 나서자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차원에서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전례 없는 일”이라며 “검찰과 법원은 변호사의 의뢰인 비밀유지권을 침해하는 영장을 남용하지 말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방이 '김앤장'이다보니 묘한 시각도 나온다. 즉 그간 여론에 극히 민감한 사건을 수임해오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낸 김앤장이다보니 협회 차원에서 이를 방어할 경우 김앤장을 변호하는 ‘공동 행동’으로 비칠까 고민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다보니 작년에 이어 올해도 김앤장이 압수수색 대상이 됐음에도 아직 로펌 업계 차원의 대응은 없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여당 등을 비롯해 정치권 전반에서 김앤장에 대해 감시의 눈을 켜고 있는데, 협회 차원에서 자칫 목소리를 냈다가 ‘적폐’를 돕는다는 여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고심 중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앤장은 그간 로펌들 사이에서의 유행어인 'L.O.V.E' (롯데 Lotteㆍ옥시 Oxyㆍ폭스바겐 Volkswagen 등의 앞머리 약자) 클라이언들 등을 통해 포렌식과 연관된 분야에서 막대한 매출을 얻어왔다. 이번 사건 이후 포렌식 자문 시장의 지각 변동도 불가피 할 전망이다.

      동시에 김앤장 포렌식 팀이 ‘성역’이 아닌 점이 드러난만큼 고객군이 분산될 것이란 기대와, 관련 산업 전반의 성장성이 정체할 것이란 우려도 교차하고 있다. 다른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김앤장이 1조원 매출 중 3000억~4000억원 가량을 특허·IP·컴플라이언스·포렌식 등을 통해 얻는데, 이 중 포렌식의 기여도도 상위권으로 알려져 있다”며 “다른 로펌들은 지난해부터 팀을 꾸려 따라가는 입장인데, 이번 사태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