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스마트폰…'글로벌 가전업체'로 가닥잡은 구광모호 LG전자
입력 2019.04.29 07:00|수정 2019.04.30 18:10
    LG전자, 국내 스마트폰 설비 베트남 이전 결정
    누적 적자에 반전요인 찾기 어려워
    구광모 신임 회장 이후 구조조정 본격화
    손실규모 줄이며 당분간 가전·TV에 집중…시장은 "긍정적"
    • 구광모 신임회장 체제 이후 사업 재조정에 속도를 내온 LG그룹이 결국 스마트폰 사업을 수술대에 올렸다. LG전자는 그간 스마트폰 사업에서만 조(兆)단위 적자가 누적돼 재무여력은 물론 미래 성장 동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국내 투자와 고용을 강조하고 있는 정부 기조를 거스르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조치를 내려야 할 정도로 반전 요인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LG전자가 설비 이전과 인력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으로 스마트폰 사업의 적자 규모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를 통해 투자 여력을 확보한 후 가전과 TV 등 다른 사업에서 시너지를 거둘 수 있는 M&A 및 투자 기회를 모색하는 데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다.

      LG전자는 최근 연간 500만대 물량을 생산해온 평택 스마트폰 생산 설비를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하는 안을 공식화했다. 750여명에 달하는 생산 인력들은 일부 희망퇴직을 받거나 가전 사업 등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로 전출할 예정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은 지난 2015년 2분기 이후 올 1분기까지 1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이 기간 누적 적자만 3조원에 달한다. LG전자도 스마트폰 담당 수장을 경질하고, 조직 효율화 및 비용통제 등을 통해 반전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결국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생산기지 이전을 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 LG전자는 2013년 연간 8000만대에 달하는 스마트폰을 팔아왔지만, 지난해 5000만대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올해는 4000만대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 성장세를 읽지 못한 점, 잦은 불량과 제품 완성도 부족, 경영진의  브랜드 전략 실패 등 여러 실책이 거론돼 왔다. LG전자도 매 분기 '반전'을 보이겠다 선언했지만, 이제 스마트폰 시장 전체의 성장 둔화와 양극화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LG전자 담당 연구원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초고가 프리미엄 시장과 저가 위주 '가성비' 제품으로 양분됐고, 500달러(생산 원가 기준) 이상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지지 못한 업체들의 퇴출 기조가 뚜렷해 지고 있다"며  "중간에 낀 LG전자, 소니, 중국 오포(Oppo)·비보(Vivo) 등이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생산기지 이전 결정에 따라 LG의 스마트폰 사업 전략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LG전자는 경쟁사들의 출시 시기에 맞춰 국내 공장에서 프리미엄 모델을 생산한 후 점차 해외 공장으로 공급망을 넓혀가는 전략을 펴왔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애플 등 상위업체들과 프리미엄 시장에서 점유율 및 속도 경쟁을 벌이는 대신 당분간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익성 극대화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한다. 연간 10여가지에 달하는 출시 모델 수도 연간 3개 수준의 일본 소니(Sony) 수준으로 대폭 줄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생산기지 이전 조치 전에도 LG전자 내에서도 스마트폰 사업의 존재감을 축소하는 기조는 뚜렷했다. 올해 인사를 통해 권봉석 HE사업본부장(사장)이 MC사업본부장을 겸임하게 되면서, 사내에선 점진적으로 MC사업본부를 팀단위로 재편해 HE사업본부에 편입하는 수순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적 측면에서도 영업이익 뿐 아니라 매출 규모까지 줄어들며 중요도도 이전과 같지 않다. 차량전장(VS)사업본부 등 대체 먹거리들이 매출 규모를 키워온 점도 영향을 미쳤다.

      시장에선 LG전자의 구조조정 방향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다. 다소 결단 시기가 늦춰진 데다 이에 따른 기회 비용을 치뤄야 했지만, ‘인화’ LG그룹 내에서 금기시된 인력 구조조정까지 꺼내들 정도로 고강도의 조치를 내비쳤다는 평가다.

      LG그룹은 구광모 신임 회장 취임 이후 지주사를 중심으로 발빠른 사업재편에 나서고 있다. 이미 LG전자 내 연료전지사업부 철수, 수처리사업 매각 등 비주력 사업 매각에도 착수했고, 태양광 사업 등도 사업 지속 여부를 저울질 중이다. 시장에선 이 중에서도 그룹 내 실적 부진이 가장 뚜렷했던 스마트폰 사업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단 지적이 나왔다.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위기가 시작된 2015년 경에 구조조정 결단을 내리는 게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지만, 그 당시엔 구본무 회장의 애착이 강한데다 그룹 내 MC사업본부의 영향력이 다른 사업부를 압도했던 상황이라 누구도 말을 못 꺼냈을 상황이었다"라며 "결단이 다소 늦었지만 주주들의 불만에 대응안을 내놓았다는 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LG전자가 스마트폰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이를 대체할 신사업 확보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주력사업인 가전에서 사업 영역을 넓히며, 미래 사업으로 점찍은 차량 전장부품과 로봇 사업 등에 투자를 집중할 것으로 내다본다.

      회사 내부에서도 현재 LG가 강점을 보이는 이른바 ‘백색 가전’(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편, 소형 가전 쪽의 역량 강화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용 시장에선 이미 중국 업체들의 진입이 뚜렷한 만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브랜드 확보를 위한 M&A도 단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사업으로 제시한 로봇 분야 진출도 기존 사업인 가전과 연계할 수 있는 분야로 재원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른 LG전자 담당 애널리스트는 "가전 분야의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편견과 달리 여전히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선 각축전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고령층 인구에 맞춘 가전 제품 등에 일찌감치 집중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로봇 분야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일본 파나소닉과 유사한 전략을 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