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활 건 전기차 배터리 패권싸움...'제 2의 반도체'까진 과제도 산적
입력 2019.06.21 07:00|수정 2019.06.24 09:39
    국내 3사 모두 글로벌 10위권 안착하며 존재감
    매년 조단위 투자 계획도 발표…LG화학 SK이노는 소송전 격화
    완성차업체 전기차 비중 확대 및 중국시장 보조금 축소 움직임 등 호재도
    中·日·유럽 견제도 본격화…저가 경쟁 및 차세대 배터리 양산도 변수로
    • 전기차 배터리 시장 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국내기업들의 보폭이 빨라지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0위권 내에 국내 3사가 모두 포함되는 등 영향력도 점차 확대됐다. 대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이 위축된다는 우려 속에서도 배터리는 매년 조단위 뭉칫돈이 투입되는 손꼽히는 성장 산업으로도 꼽혀왔다.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부도 ‘제 2의 반도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지원을 시작했다. 하지만 신중론도 여전하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여전한 가운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기술의 자체 내재화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기술력에서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업체들은 물량공세 대신 '차세대 배터리'에 배팅해 역전을 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누적 전기 승용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LG화학(4위·점유율 12%), 삼성SDI(6위·3.4%), SK이노베이션(8위·2.3%) 등 국내 3개사가 모두 10위권 안에 진입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존재감이 급부상했다. 불과 1년여만에 점유율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며 삼성SDI를 1%포인트 차로 뒤쫓았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5년까지 배터리 생산량을 20배 가까이(100GWh) 늘려 글로벌 3위 배터리 업체가 되겠다 밝히기도 했다.

    • 실제 매출 성장 수준으로만 보면 ‘제 2의 반도체’라는 수식어가 통용될 정도로 빠른 성장세다. 현재 업계에서 추정하는 LG화학의 1분기까지 수주량은 약 110조원 규모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16년까지만 해도 3조5000억원 수준에 그쳤던 전지부문 매출액은 지난해 6조4000억원까지 빠르게 커졌다. 회사는 올해 매출 10조원을 자신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출발을 보인 SK이노베이션도 1분기 누적 수주량만 50조원으로 추정될 정도로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양사의 경쟁도 어느때보다 치열해 현재 인력유출을 두고 미국에서 소송전을 벌이는 등 법정 공방으로까지 전개된 상황이다.

      각 사들이 빠른 증설 및 설비투자 경쟁을 펼치며 신용도 하향 우려가 나올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를 펼치고 있다. LG화학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67.1% 수준에서 올해 1분기 81.5% 수준까지 상승했다. 1조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결정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금 조달이 반영됐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말 86.7%였던 부채비율이 102.1%까지 상승했다. 양 사 모두 대규모 투자금 조달 과정에서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서 신용등급 하향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워낙 매출 상승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각 업체에선 지금 무리해보일 정도로 투자를 집행하더라도 앞으로 한자릿수 후반(high-single) 수준의 영업이익률만 안정적으로 얻어내면 성공적이라 판단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내 배터리사들이 앞다퉈 투자에 나서는 데는 향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수급 상황에 대한 기대가 반영됐다. 즉, 향후 '배터리가 없어서 못 팔' 상황에 대비해 유의미한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계획이다.

      우선 글로벌 완성차들이 앞다퉈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의 전환 계획을 내비친 점 긍정적 요인이다. 폴크스바겐과 BMW그룹은 각각 자사의 친환경차 비중을 향후 2025년까지 25%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더 나아가 아우디는 약 50조원을 투입해 전체 차량의 33%를 전기차로 채우겠다 밝혔다. 다만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현재까지 팔면 팔 수록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순수전기차 비중을 각 사가 계획대로 늘릴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국내 업체들의 진입을 막아오던 중국 내 전기차 보조금 축소에 대한 기대감도 반영됐다. 현대자동차가 중국 시장 내 전기차 생산을 앞두고 배터리 공급사로 중국 CATL을 낙점하는 등 지금까지도 중국 시장 진입을 위해선 현지업체가 생산한 배터리를 채택하는 게 '상수'였다. 하지만 중국업체에 대한 보조금이 점차 축소돼 가격 격차가 점차 좁혀지다보니 균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LG화학은 중국 내 1위 완성차업체 지리자동차와 조인트벤처(JV)를 맺고 오는 2022년부터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도 중국 내 조단위 투자를 검토 중이다.  최근 일본 도요타가 중국법인에서 생산하는 코롤라 PHEV 모델에서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를 낙점한 것도 대표적 사례다.

      급격한 매출 상승이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 2의 반도체'가 아니라 여전히 중국의 저가 공세에 맥을 못추는 '제 2의 태양광'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특히 업계에선 중국ㆍ일본ㆍ유럽 등 글로벌 경쟁사들의 반격 전략을 두고도 논의가 모여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약진에도 여전히 전기차 배터리 선두에 위치한 CATL, 3위권 BYD 등 중국업체들의 성장세는 공고하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장벽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오다보니 국내에선 높은 가격으로 배터리를 납품하고, 글로벌 시장엔 저가 공세를 펴며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 배터리 인력들도 공격적으로 흡수해 기술력 격차도 국내업체와 채 1년여 수준까지 좁혔다는 평가다. 이를 바탕으로 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들에 대규모 물량을 납품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리튬, 코발트 및 희토류 등 배터리 분야 필수소재도 중국 정부 차원에서 일부 개입이 가능한 점도 변수로 꼽힌다.

      일본기업들도 다시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테슬라(Tesla) 단일 수주 건으로 글로벌 상위권에 위치했던 파나소닉은 오히려 설비 확장 요청을 거부하는 등 점차 테슬라 의존도를 줄여가며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양산에 매진하고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국내업체들이 양산 중인 리튬이온배터리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높고, 무엇보다 폭발하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최근 파나소닉은 일본 완성차업체 도요타와 JV를 맺고 오는 2022년까지 전고체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생산에 나서겠다 밝혔다.

      현재까지 배터리를 전량 외부에서 끌어오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자체 개발 속도를 내며 배터리 업계와의 헤게모니 싸움에 대비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 내 배터리 업체의 성장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 폴크스바겐은 유럽·아시아·북미 등 각 지역을 기반으로 조인트벤처(JV)를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북미지역에서 JV를 두고 협의 중이고, 유럽지역에선 스웨덴의 배터리사 노스볼트(Northvolt)와 컨소시엄 구성이 논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력 유출 문제 등이 꾸준히 거론됐지만 SK이노베이션은 "기술 유출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부인했다.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으로의 이직이 논란이 됐지만 유럽 노스볼트도 실제 LG화학 인력들을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하는 등 적극적으로 규모 확장에 나서고 있다"라며 "하지만 양극재분야 등 관련 밸류체인 소재 업체들이 이미 몸값이 많이 오른데다 기존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있다보니 내재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빠르게 존재감을 드러내기엔 한계가 명확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