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품목별 대안은? 다변화 가능하지만…
입력 2019.07.25 07:00|수정 2019.07.26 11:53
    조율·최적화로 성능 축적 필요
    규제 3대 품목, 대안 고민 활발
    추가 규제는 비교적 피해 적어
    공작기계 규제 땐 타격 가능성
    • 일본의 수출규제가 일각의 우려대로 반도체 등 국내 핵심 첨단산업을 멈춰세울 수 있을까. 일부 규제가 현실화하고 추가 규제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생산에 차질이 생기는 최악의 상황은 피해가고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그간 국내 첨단 소재 산업에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게 '경험의 축적'이라고 말한다. 삼성전자 등 초대형 제조사들이 품질과 성능을 고려해 일본의 소재를 주로 활용했고, 적용에 리스크가 따르는 국내 소재에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첨단산업에선 일단 기술을 적용하고 이를 조율하며 최적화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기술 및 노하우가 추가로 쌓인다.

      이번 수출규제를 계기로 소재 조달 다변화가 핵심 의제로 부상한만큼, 여러 국산 소재 제조사들에 '기회'가 주어질 전망이다.

      이번 무역분쟁으로 국내 반도체업계에 가장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예상됐던 소재는 포토레지스트(PR)다. 반도체의 바탕이 되는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새기는 '노광'공정의 핵심 소재다.

      특히 차세대 노광 기술인 극자외선(EUV) PR은 대체가 어려운 품목으로 꼽혔다. EUV PR은 현재 7나노미터(nm) 미세공정에 쓰이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소재다. 파운드리 장비는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에서 독점 공급하는데, 개발 과정에서 JSR 등 일본 업체들과 협력해왔다.

      업계에서는 대체 공급원으로 벨기에 EUV RMQC를 지목한다. 일본 JSR과 벨기에 반도체 연구기관 IMEC의 합작사로, EUV PR을 생산하고 있다. 단순한 일본기업의 해외법인이 아닌, 벨기에 정부 산하 비영리기관과의 합작사인만큼, 일본 정부의 압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차세대 기술로 단계를 건너뛸 가능성도 언급한다. 현재 일본에서 생산중인 EUV PR은 4nm 등 초미세 공정에서는 효율에 한계를 보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무기물 PR이 활발히 연구돼고 있다.

      무기물 PR의 선두주자는 미국 인프리아(Inpria)다. 인프리아는 미국 오리건주립대학교 연구소에서 분사한 스타트업인데, 삼성벤처투자가 초기 핵심 투자자(existing investor)를 맡고 있다.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대주주 수준이며, 이사회에도 참여하고 있다.

      불화아르곤(ArF) PR는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인 디램(D-RAM)에 주로 쓰인다. 일본 JSR, TOK, 신에츠화학 등에서 공급한다.

      국내에서는 동진쎄미켐이 2013년 ArF PR 개발에 성공했다. 동진쎄미켐은 3D낸드플래시 반도체에 쓰이는 KrF(불화크립톤) PR을 삼성전자에 독점 공급하던 업체다. ArF PR는 일본 업체에 밀려 6년간 시장점유율이 한 자릿 수에 그쳤다. 해외에서는 미국 다우케미칼도 ArF PR 공급이 가능한 회사로 꼽힌다.

      불산(HF) 쇼크는 다소 진정돼가는 모습이다. 현재 불산의 일본 수입 의존도는 42~44% 수준이다. 70%가 넘었던 건 2010년대 초반의 이야기다.

      일본산 불산의 경쟁력은 파이브나인(99.99999%) 이상의 고순도라는 점이다. 국내 생산 불산은 쓰리나인(99.999%) 수준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수율엔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아예 적용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국내산 불산 적용 검토에 착수했고, 후성 등 관련 업체 주가가 수혜를 입었다.

      다만 여전히 국내산 불산의 품질에 대한 초대형 제조사들의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공개석상에서 "공정에 맞는 불화수소가 나와야 하는데 (국내에선) 아직 그정도까지의 디테일은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폴리이미드(PI)는 사실상 큰 문제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투명 폴리이미드(CPI)는 이미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생산하고 있다. 화웨이 등 주력 스마트폰 메이커 대부분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CPI를 채택했다. 삼성전자만 갤럭시폴드 초도물량에 일본 스미토모의 제품을 적용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절연막으로 쓰이는 감광성 폴리이미드(PSPI)는 이녹스소재와 금호석유화학 등이 개발했다. 적용에는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초대형 제조사들의 협력 방식에 따라 조기 대체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향후 일본이 한국을 수출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주요 전략물자의 수출에 추가적인 규제가 진행될 수 있다. 한국전략물자관리원이 일본의 수출무역관리령을 바탕으로 지난 5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소재 및 장비·2차 전지 소재·자동차 부품 등이 추가 규제 대상으로 꼽힌다.

      이미 수출 규제 대상이 된 3대 소재 이외에, 국내 업계에 심각한 타격이 될만한 소재는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일본 르네사스에서 공급하고 있는 집적회로(IC)와 전력반도체(PMIC), 차량용반도체는 사실상 전면 대체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르네사스 자체의 경쟁력이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많이 뒤떨어져있고, 삼성전자 등 초대형 제조사가 자체 개발·생산 역량도 갖추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 대체 수입선도 풍부한 편이다.

      국산화율이 한 자릿 수에 불과한 반도체 관련 장비의 경우, 도쿄일렉트론이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미 2년치 생산능력 투자(CAPEX) 발주를 거의 마친데다 최근 반도체 재고가 늘며 추가 투자 필요성이 제한적이다. 미국 AMAT·램리서치 장비로 대체도 가능하다.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의 경우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과 생산능력이 뛰어나 다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리콘 웨이퍼 시장 세계 1위는 신에츠(시장 점유율 27%), 2위는 섬코(26%)다. SK실트론과 선에디슨의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각각 9%, 10%) 섬코 한 곳에 못 미친다. 품질도 다소 뒤떨어진다는 평가다.

      한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SK실트론 등의 웨이퍼 품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마음먹고 적용하면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문제는 생산능력인데 웨이퍼 규제가 현실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SK실트론 등으로 공급원이 다양화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일본 DNP가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OLED용 파인메탈마스크(FMM)의 경우 국내 중소기업인 APS홀딩스와 웨이브일렉트로닉스가 개발을 마쳤다. 완전한 대체가 가능할 지 여부엔 다소 의견이 갈린다. 웨이브일렉트로닉스의 경우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와 제품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3분기 중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2차전지의 경우 이미 국내 소재로 상당부분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는 평가다.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 4대 재료 모두 국내외에 일본기업의 경쟁 공급처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일본업체들이 특허권리와 기술에서 앞서있는 건 사실이지만, 일부 특성에 차이가 있다 해도 전지 양산에는 차질이 없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분리막의 경우 일본업체의 비중이 높아 일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이 일본업체와 주도권 싸움에 나선데다 더블유스코프도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어 대체가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공작기계 부문은 일본기업 화낙의 경쟁력이 압도적이라 다소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평가다. 창원 등 국내 주요 공단은 화낙 제품의 수입이 막히면 공장을 세워야 할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독일에도 주요 메이커가 있지만 '마이스터'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 구매자가 아닌, 생산자의 규격에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대체가 쉽지 않다"며 "일본이 작정하고 한국 경제를 멈춰 세우려면 화낙만 규제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