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S에 'PB 명가' 하나은행 흔들리나...기회 엿보는 신한-KB
입력 2019.08.27 07:00|수정 2019.08.28 09:26
    압도적 1위 하나銀 명성 하락 불가피
    손실 본 개인고객 3500여명...추정자산 7兆
    신한·국민銀 "남 일 아니다"...그래도 영업 '호기'
    PB 고객 담당 책임자 입지에도 금융권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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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생결합증권(DLS) 대량 손실 파문이 하나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사업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국내 은행권에 최초로 PB 개념을 도입했고, PB 고객 자산 및 관련 인프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민영화 이후 급성장하던 우리은행의 PB 사업 역시 '일단 멈춤'이 불가피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대외적으로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수혜를 기대하는 표정이다.

      영국 7년 CMS(파운드 파생) 연계 DLS와 독일 국채 10년물 연계 DLS로 인해 대규모 손실을 눈 앞에 둔 개인 고객은 하나은행 1829명, 우리은행 1632명 등 3500여명에 이른다. 해당 상품은 PB 채널을 통해 1인 최소 1억원 이상 사모판매 된 상품으로, 1인당 평균 투자액은 2억200만원이다.

      구체적으로 공개되어있진 않지만, PB채널을 이용하는 국내 자산가들의 1인당 평균 금융자산은 2018년 기준 22억원 안팎으로 파악된다. 대략 7조6000억여원의 자산을 가진 3500여명의 자산가가 담당 PB로부터 소개받은 상품으로 인해 최대 96%의 손실을 입게 된 상황인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들 개인 자산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투자자 상당수가 '원금 손실 상품이라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만큼 일단 금융당국이 소집할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충돌이 불가피해보인다는 평가다. 조정이 실패하면 소송전이 기다리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공동소송에는 현재 수십명 수준의 투자자들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나란히 김앤장을 선임해 소송전에 대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은행 입장에선 '원금 보장'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상당 기간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 문제는 하나은행의 PB 사업이 짊어져야 할 대가다. 하나은행은 전통적으로 PB업계의 최강자다. 현재 321명의 전문 PB와 687명의 VA(중요고객 자산관리사)가 250곳의 PB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업계 최고 수준이다.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PB 부문 고객 자산 규모가 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PB 사업이 신성장동력으로 각광받던 2012년 이미 25조원 수준의 PB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업계 2위 신한은행의 PB 자산이 12조원 수준이었다. 여기에 외환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10조원 안팎의 PB 자산을 추가 확보하며 규모를 키웠다.

      현재 국내 은행권 전체의 PB 자산 규모는 200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18개 은행 중 하나은행 등 4대 은행이 절반인 120조원 수준의 자산을 확보하고 있고, 이 중 상당한 규모가 하나은행 PB 자산인 셈이다. 역사가 오래된만큼 고객 충성도도 상당히 높다는 평가다.

      이번 사태는 2300여명이 1700억원을 투자해 80% 이상 손실을 본 2005년 파워인컴펀드 사태 이후 1금융권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판매 사고'로 꼽힌다. 'PB 명가'로 꼽히던 하나은행의 브랜드에 타격을 입히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고액 자산가는 두 곳 이상의 PB와 거래하며 자산을 분배하고 상품을 저울질한다"며 "하나은행의 상품 추천에 실망한 고객들이 타 은행으로 거래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역시 PB 사업에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최대주주였던 우리은행은 4대 은행 중 PB 사업 규모가 가장 작았다. 민영화 이후 사업 규모를 본격적으로 확대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지속해왔다.

      우리은행은 준 PB 직급인 FA(Financial Advisor)를 지난 7년간 2배 이상 늘렸다. 또 일반 영업점 내 PB 공간인 '투체어스 라운지'를 현재 700곳 이상 확보했다. PB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고객 기준을 1억원에서 3000만원으로 조정하며 진입장벽을 낮추는 한편,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투체어스 프리미엄' 센터를 개설하며 영역 확장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던 우리은행 PB사업에 찬물을 끼얹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사실상 거의 전액이 손실될 가능성이 큰 독일 국채 10년물 연계 DLS는 우리은행만 취급했다는 점이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PB는 "기업금융이 중심인 우리은행이 '고퀄리티 개인 비즈니스'인 PB 사업을 잘 할 수 있을까 우려가 많았지만 지금까진 잘 해온 게 사실"이라면서도 "우리은행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역시 우리은행은 개인 고객 사업이 약하다'는 평판이 생기는 것이 두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억원이 넘는 투자자당 DLS 평균 매수금액을 감안하면, 이번 상품은 대부분 자산 10억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들에게 추천됐을 거란 분석이다. 은행 PB 사업에서 이들은 핵심 고객군으로 분류된다. 이들이 현 거래 은행과 갈등을 빚고 다른 은행으로 거래를 옮긴다면, 혹은 이번에 손해를 보지 않았더라도 은행의 태도에 실망한 다른 고객들이 연쇄적으로 움직인다면, PB 사업 부문에 '대격변'이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이번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대외적인 메시지는 극도로 자제하는 모습이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이번에 문제가 된 DLS를 취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예적금 금리 플러스 알파' 상품에 대한 고객 요구가 더욱 커지는 상황에서 '언제 나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재앙'이라는 인식이 강한 까닭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왜 그런 상품을 취급했고 지금 내부가 어떤 상황일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며 "금융상품의 구조가 점점 더 복잡다단해지는 상황에서 우리 PB들도 언제나 이번 사태와 같은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말했다.

      물론 사업적 측면에서는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에 '호기'가 찾아왔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씨티은행으로 대표됐던 외국계 은행의 PB 자산관리 서비스가 국내에서 퇴조한 이후, 고액 자산가들의 선택지는 그리 넓지 않다. 증권사로 가기엔 투자 성향이 저위험 중수익 지향으로 보수적이다. 결국 거래 은행을 옮긴다면 이번 사태의 영향이 없었던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이 첫 손에 꼽힌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 담당 증권사 연구원은 "냉정하게 말하면 은행 PB 사업 부문에서 압도적 1등 사업자와 공격적 투자를 집행하던 4위 추격자가 동시에 넘어진 상황"이라며 "외부적으론 메시지를 자제하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영업을 위한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고과 평가'의 핵심인 3분기에 불거지며 해당 부서를 이끌고 있는 부문장들의 입지가 어떻게 변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하나은행은 정춘식 개인영업그룹 그룹장(부행장)이 PB 사업의 최고 책임자다. 정 부행장은 인천영업본부장·부산영업본부장·영남영업그룹장을 거친 영업통이다. 그 아래로 내자동 지점장, 구로영업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영업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박세걸 전무가 WM사업단장을 맡아 PB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실무 일선은 클럽원 센터장을 거친 이재철 PB사업부장이 맡고 있다.

      우리은행은 정채봉 우리은행 영업부문장(부행장)이 PB 고객을 비롯한 개인 부문 최고 책임자다. 정 부행장은 강남2영업본부장을 거쳐 IB부문장을 맡았다가 손태승 행장 취임 이후 WM그룹장을 거쳐 국내영업을 총괄하고 있다. 역시 강남2영업본부장을 거친 정종숙 자산관리(WM)그룹장이 정 부행장의 뒤를 받치고 있다. 우리은행은 정 부행장을 중심으로 70명 규모의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번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