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兆 기업구조혁신펀드, 재원 마련부터 투자처 확보까지 난항 예고
입력 2019.09.04 07:00|수정 2019.09.05 17:23
    1兆에서 확대 예고…재원 마련 계획 불투명
    시중은행 추가 참여도 재정 투입도 쉽지 않아
    자금 키우는데…“투자처 확보 어렵다” 지적도
    • 정부가 기업구조혁신펀드 운용 규모를 최대 5조원까지 늘리기로 했지만 이행 방식과 실효성엔 의문 부호가 붙고 있다. 주요 출자자(LP)로 참여했던 시중은행들이 보다 많은 자금을 댈 가능성은 크지 않고 재정을 투입하기도 쉽지 않다. 마땅한 구조조정 기업은 잘 보이지 않는데 경쟁만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자본시장을 통한 구조조정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방안 중 하나로 기업구조혁신펀드 운용 규모 확대를 꼽았다. 펀드 운용 규모를 단계적으로 최대 5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 하반기 중 펀드 규모를 1조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펀드를 출시할 때부터 예정돼 있었다. 7월 2차년도 블라인드펀드(3500억원) 운용사 선정 공고를 냈고, 지난 30일 운용사 프리젠테이션(PT)이 진행됐다.

      정부 계획대로면 앞으로 4조원 규모의 추가 펀드 결성이 이뤄져야 한다. 기업구조혁신펀드(모펀드)와 민간자금이 절반씩 참여하는 구조를 감안하면, 궁극적으론 모펀드만 2조원의 추가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 재원 마련 방안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 처음엔 국책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은 물론 시중은행도 힘을 보탰다. 펀드 출자를 부담스러워했던 시중은행도 있었지만 결국은 모두 참여했다. 구상 끝에 다른 출자자의 권리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무(無)순위 출자라는 묘수를 짜냈다.

      시중은행이 이번에도 자금을 댈 지는 미지수다. 성장 동력이 옅어지는 은행들 입장에선 펀드 투자 기대감보다는 손실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지분 투자는 특히 은행이 조심스러워하는 영역이다. 350억원을 내는 데도 머뭇거렸는데, 단순 계산으로 그보다 4배나 많은 돈을 내야 한다. 기존 펀드의 투자가 잘 이뤄지고 있다지만 공언한대로 수익성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

      국책은행이 힘을 쏟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꼬리표를 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최근엔 한국전력의 실적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같은 돈이라면 힘들어진 기업보다 커갈 기업에 넣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쉬운 방안은 재정 투입이지만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국회 이견으로 올해 추가경정예산에 산업은행 출자 대비용 1050억원을 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구조혁신펀드 확대 시 누구에게 얼마나 출자를 받을 것인지는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투자처를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여러 구조조정 지원 성격의 펀드가 나타나는데 정작 투자할만한 곳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일시적 유동성 위기로 회생절차나 채권단 관리에 들어갔더라도 투자처로서 매력이 남은 기업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 위기를 맞은 기업은 아예 회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구조혁신펀드도 덩치를 키운다. 수익을 내기 위한 허들이 높아지는 셈이다.

      한 구조조정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회생절차나 워크아웃에서는 눈길이 가는 기업이 없고, 그보다 낫고 가치를 끌어올릴만한 요소가 남은 기업은 구조조정 펀드가 아닌 일반 펀드의 투자 영역과 겹칠 가능성이 있어 투자처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어렵게 투자했는데 잡음이 발생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기업구조혁신펀드 1호 투자는 박문각에 이뤄졌는데 구조조정 성격의 투자가 맞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투자 조건이 너무 박하다고 생각한 회사 측은 급기야 경영권 매각을 위해 다른 사모펀드에도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차년도 운용사 선정 과정에서도 불만이 흘러나온다. 유암코의 참여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유암코 구조조정 기능 강화를 별도 과제로 꼽아 왔다.

      이번에 지원한 한 운용사 관계자는 “은행 돈 받아서 구조조정하라고 만들어진 유암코가 시장 자금까지 끌어가면 나머지 운용사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