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코리아 펀드가 보여준 자산운용업계의 우울한 단면
입력 2019.09.25 07:00|수정 2019.09.26 10:10
    액티브펀드 몰락 속 수익성보단 화제성
    막상 뚜껑 열어보니 운용전략은 평범
    소재·부품 키운다지만 실제 도움될진 미지수
    SRI펀드 전문가에게 기술펀드 맡겨
    • '애국펀드'로 명성을 얻고 있는 NH아문디자산운용의 '필승코리아 펀드'가 자산운용업계의 최근 고민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액티브펀드의 몰락 속에서 고객을 유인할 '테마'도, 색다르게 운용할 '방식'도, 총대를 맬 '사람'도 부족한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정치 테마+착한 펀드...'이렇게라도 눈에 띄어야'

      필승코리아 펀드는 애초에 정치적 시류에 맞춘 테마 펀드로 기획됐다. 필승코리아 펀드의 모체는 NH아문디운용이 지난해 5월 등록한 '통일로 하나로 펀드'다. 당시 NH아문디운용은 1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통일·평화 관련 트렌드가 유행하자 이 펀드를 기획하고 금융감독원에 상품 출시를 위한 일괄신고서를 제출했다.

      이 펀드는 운용사와 판매사가 받는 수수료의 20%를 기금으로 적립해 남북경제협력 지원과 통일 관련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컨셉으로 설계됐다. 운용업계에서는 NH아문디운용이 '정치적 테마+착한 펀드'의 이미지를 이 때부터 고려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NH아문디운용은 1차 북미정상회담이 종료된 후 펀드의 이름을 '하나로 코리아'로 바꿨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통일펀드'와 이미지가 겹치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개명에도 불구, '하나로 코리아 펀드'는 결국 시장에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 당시 비슷한 테마의 펀드가 쏟아졌던데다 실제 비핵화 성과가 나지 않으며 평화 기류가 점점 무뎌졌기 때문이다.

      NH아문디운용은 지난 8월 초, 방치하고 있던 하나로 코리아 펀드의 이름을 필승코리아 펀드로 바꾸고 구조를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일본이 시작한 수출규제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였다.

      남북경협이 아닌, 산업구조개편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부품·소재·장비업체로 투자 컨셉을 바꿨다. 남북경협 및 통일관련 재단에 지원하기로 했던 기금은 부품·소재·장비 등 산업특성화 대학 및 연구소에 지원하는 것으로 구조가 바뀌었다.

      '정치적 테마+착한 펀드'의 기본 골격은 유지한 채 대상만 남북경협에서 극일·소재 독립으로 바꾼 것이다.

      운용업계에서는 이를 투자자들의 눈에 띄기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한다. 투자자들이 주식형 액티브펀드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시점에 뚜렷한 컨셉이라도 있어야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한 펀드라는 것이다.

      실제 2007년 65조원에 육박했던 국내 주식형 액티브펀드 규모는 6월말 현재 22조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7년 액티브펀드를 추월한 주식형 패시브펀드 규모는 같은 기간 10배 가까이 늘어나며 4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국내 펀드시장은 14조원 이상 성장했지만, 주식형 액티브펀드에서는 2조원 가까운 자금이 빠져나갔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필승코리아 펀드의 수수료 구조를 보면 수익성보다는 철저하게 마케팅·화제성 관점에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고민이 담긴 것 같다"고 말했다.

      운용 방식은 '평범'...운용할 시니어도 '태부족'

      막상 '극일' 컨셉의 부품·소재·장비 업체로 테마를 잡았지만, 운용사가 밝힌 포트폴리오를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는 평가다. 지난달 19일 기준 주요 상위 보유 종목에 삼성전자(구성 비중 20.77%), SK하이닉스(5.16%), 현대자동차(5.08%)가 들어있는 까닭이다.

      반도체 및 화학 업종의 기술력있는 강소기업에 주로 투자할 것으로 예상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형주 위주로 편입해 벤치마크지수(BM)인 코스피지수만 추종하는 전략이 아니겠느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필승코리아 펀드의 존재가 소재·부품 산업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금융권에서는 회의적이다. 유통시장에서 몇몇 기업의 주식을 매수한다고 해서 그 자금이 회사에 지원되는 건 아닌 까닭이다. 주가 부양에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전체 설정 규모가 700억원대이고 이중 상당수를 대형주에 투자한 펀드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펀드 자금이 소재·부품 기업에 직접적으로 자금이 들어가려면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의 펀드로 구성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모 펀드는 환매 등 설정액이 유동적인 구조 특성상 상장사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어렵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현직 대통령까지 가입하는 걸 보고 '저 펀드에 가입하면 국익에 도움이 되겠구나'하고 생각했겠지만, 해당 산업에 유의미한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며 "펀드 규모 1000억원을 가정했을 때 운용사가 수취하는 보수는 8억원 정도고 학교·연구소에 지원할 수 있는 기금은 4억원 정도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승코리아 펀드의 책임운용전문인력은 정희석 NH아문디자산운용 주식운용2본부장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 출신 15년차 베테랑이다.

      다만 운용업계에서는 정 본부장을 옐로우칩(중저가 우량주)와 사회책임투자(SRI) 전문가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정 본부장은 현재 NH아문디운용의 대표적인 SRI펀드인 '장기성장 대표기업 펀드'의 책임운용을 맡고 있다. 이외에 옐로우칩 펀드인 '차세대리더 펀드'와 예금금리 플러스 알파를 추구하는 채권혼합형 펀드인 '모아모아15, 30'을 담당한다.

      기술력에 대한 인사이트가 필요한 소재·산업 펀드의 운용역으로는 다소 맞지 않는다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물론 실제 운용은 담당 본부 내 운용역들이 함께할 수 있지만, 책임운용전문인력은 운용의사결정 및 운용결과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부담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자리로 꼽힌다.

      이는 전문사모펀드 허용 이후 운용업계 몰아닥친 인력 부족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운용에 책임을 질만한 시니어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의 운용전문인력 576명의 평균 운용경력은 8년8개월이었다. 올해 9월초 기준 운용역 수는 총 691명으로 늘었지만, 평균 경력은 5년5개월로 30% 이상 줄어들었다. NH아문디운용 역시 2015년말 9년2개월이었던 운용역 평균 경력이 현재 5년5개월로 줄었다. 인원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대부분 경험이 짧은 주니어로 충원했다는 뜻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능력과 경력을 갖춘 시니어 운용역은 2017년 이후 상당수 전문사모펀드로 이동해 공모펀드 운용사는 '책임'급(부장·본부장) 인력난이 극심한 상황"이라며 "필승코리아 펀드도 내부적으로 그나마 제일 잘 맞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안팎으로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