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 'ESS 화재 국내 최초 대응' 선언…멋쩍어진 LG화학
입력 2019.10.15 07:00|수정 2019.10.16 09:42
    잇따른 ESS 발화 사건에 ‘책임감’ 강조한 삼성SDI
    발화 제품 절반 이상 LG화학 불구, SDI 선제적 발표
    SDI 발표 후 한시간 만에 부랴부랴 입장문 낸 LG화학
    디스플레이 대전에서 배터리 전쟁으로 확산 가능성도
    • "당사 배터리 문제는 아니지만…글로벌 리딩기업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ESS(에너지 저장장치) 생태계 복원을 위해 국내 최초로 안전성 강화 조치를 발표합니다" (삼성SDI)

      지난 주 국정감사에서는 ESS 시설 화재 사안이 재부각됐다. 과거 2년간 국내 사업장에서만 ESS 화재가 26건이 났는데 대부분 LG화학ㆍ삼성SDI 두 업체 배터리(2차 전지)가 사용됐다는 지적이었다.

      삼성도, LG도 "해외 사업장에도 똑같은 배터리를 공급하는데 유독 국내에서만 불이 났다"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정부가 조사를 통해 "배터리 결함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힌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 국감 때마다 화제성 이슈를 선호하는 국회의원들의 준엄한 꾸짖음은 피하지 못했다. 이에 LG화학 등은 "아직 화재 원인이 명확한 곳이 없으니 12월까지 원인 규명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라는 방침을 내걸었다.

      사실 26건의 화재 가운데 14건이 자사 제품인 LG화학이 상대적으로 더 뭇매를 받는 입장이기도 했다.

      이 와중에 삼성SDI가 14일 예정에도 없는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주말 저녁에 급하게 언론사들에게 일정을 알리는 기습적인 발표였다. 사전 준비가 된 기업설명회(IR) 활동이 아니었다. 이날 서울 태평로로 기자들을 불러들인 삼성SDI는 "ESS 내부에 발화현상이 발생하더라도 화재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할 특수 소화시스템을 개발해 전면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운영 중인 시설에도 회사가 비용을 부담해 새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고객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의지"라는 설명이 추가됐다. 발표를 맡은 삼성SDI 허은기 시스템개발실장은 "이번 조치로 1500억원에서 2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전망이지만 당사가 부담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터리사들이  '책임소재'가 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지만, 어쨌든 재계 선두권 대기업이 기업이 국회의 지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리고 한시간 남짓 지난후. 이제 LG화학도 기자들에게 'ESS 참고자료'라는 이메일을 송부했다. 'LG화학 또한 비슷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LG화학은 “화재 위험성을 차단하는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고 현재 국제인증을 시험 통과한 상태로 추가 테스트가 마무리되는 대로 관련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주범으로 몰린 LG화학보다 삼성SDI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가 마련됐다.

      실제로 삼성SDI의 발표 내용 곳곳에는 LG화학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오인될 법한 발언과 내용들이 담겼다. '선제대응'이란 표현과 더불어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렸다. 동시에 '리딩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다보니 '책임지지 않는 기업은 리딩 기업이 될 수 없다’로 비춰지는 뉘앙스도 감지됐다.

      따져보면 ESS 화재는 국내 대표적인 2차 전지 기업 양사 모두를 괴롭히는 사안이었다. 이 사안이 불거지면서 주가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삼성SDI의 주가는 8월 30일 이후 7% 이상 떨어졌고 LG화학의 주가는 지난주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삼성SDI의 수주는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LG화학에 미친 여파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사 공동 대응은 없었다. 삼성SDI는 간담회 내내 이번 안전성 강화조치를 ‘독자적 행보’임을 강조했다. 이는 국내 2차전지 산업에서 ‘리딩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로 보일만 했다. 행여나 함께 뭇매를 맞아온 LG화학과 어떤 식으로든 '사전 협의'나 '논의'가 있었는지 질의를 했으나 이렇다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두 회사의 공동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냐고 한다면 답하기도 애매하다.

      결과적으로 두 회사 사이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혹은 '전장'으로 확대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러다보니 최근 들어 급격히 불편해진 삼성과 LG의 불편한 관계가 '전자'와 '디스플레이' 사업부를 넘어 이제 '배터리' 부문으로 확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LG전자는 삼성전자의 QLED TV를 공식 비난했고, 대통령은 사업을 선두해 온 LG디스플레이가 아닌 삼성디스플레이를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격려했다. 이 와중에 삼성SDI는 원인이 아직 불명이라는 ESS화재에 대한 선제 대응을 발표하며 여러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