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 입구만 있고 출구 없는 LCC
입력 2019.11.21 07:00|수정 2019.11.22 09:32
    LCC 사업자 난립에 못 버티는 항공사 나올 수도
    면세사업에 이은 또 한번의 정부 정책실패란 평가
    공급과잉이 촉발한 경영난에 자본시장에 외면받아
    •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가 공급과잉 위기에 직면했다. 국토교통부가 문턱을 낮춰 LCC 기업들이 대거 늘어났지만 일본 불매운동 여파로 수요는 급감해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면세점 정책 실패가 항공업계에서도 재현됐다는 비판과 함께 구조적 실적 부진 장기화, 이에 따른 안전 문제 발생 가능성까지 LCC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이 여느 때보다도 차갑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 여객실적은 국제선을 기준으로 2017년 대비 11.7% 올랐지만 LCC 공급석 증가율은 23.5%를 기록했다. 공급석 증가가 여객 증가를 2배 이상 능가하며 탑승률이 하락했고 이는 영업적자로 이어졌다. 실제로 국내 LCC 기업들 모두 올해 상반기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국내 LCC의 대표주자 격인 제주항공은 5년만의 영업적자였다.

      올해부터 회계기준 변경으로 부채가 급증하며 LCC업계 부채비율도 200~400%대 수준을 기록했다. 700~1000%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는 곳도 있다. 대체로 자본잠식 위기 상태라 은행들도 대출을 꺼리고 있어 ‘항공사들은 모두 무차입 경영’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 국내 LCC 수는 인구나 국토면적에 비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주요 국가별 LCC 숫자는 미국 9곳, 일본 8곳, 독일 4곳, 한국 9곳이다. 인구 5100만명인 한국이 약 3억3000만명인 미국과 LCC 수가 같다.

      항공 서비스가 많아지면 소비자 선택 폭이 는다는 이점은 있지만 지나친 공급과잉은 LCC의 경영난으로 이어져 소비자 안전을 되레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비행기 리스료, 유류비, 정비비 등에 자금이 안정적으로 투입돼야 한다. 결국 항공사업은 승객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을 기반으로 면허가 발급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항공 담당 연구원은 “기업 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산업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접근 자체가 탁상행정이다”라며 “오히려 경영난 악화로 안전 문제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라이선스 사업을 대하는 전형적인 패턴이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근거로 시장 진입 문턱을 낮췄고 이에 많은 사업자가 들어왔지만 공급 대비 수요가 부진해 산업 육성과 수익 창출 모두 실패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면세사업 육성을 위해 관세법을 개정하고 면세사업자를 늘렸지만 한화그룹과 두산그룹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면세특허권을 반납했다.

      내년에 들어오는 신규 LCC 3사(플라이강원·에어프레미아·에어로케이)도 정부 차원의 산업 육성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토부는 이들 기업에 항공 면허를 발급하는 조건으로 반드시 3년간 지방의 거점공항을 유지하도록 했다. 플라이강원은 양양국제공항, 에어로케이는 청주국제공항 내에서만 노선을 운영할 수 있다.

      전체 공항여객 시장 규모는 8000만명가량이다. 이 중 양양공항과 청주공항은 각각 200만명, 250만명 수준으로 전체 수요층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방 거점공항을 육성하려는 정부 차원의 입김이 있었지만 LCC 공급과잉 불씨를 키웠고 그 결과 수익까지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가 기초체력이 부족한 사업자에게 항공 면허를 발급하는 것도 문제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업면허와 노선면허, 항공기운항증명(AOC)을 모두 충족해야 최종적으로 항공 면허가 발급된다. 일차적인 심사 기준은 ▲면허 결격사유 여부 ▲자본금 150억원 ▲항공기 5대 보유로 파악된다. AOC는 가장 마지막 단계로, 내년에 더 들어오게 될 신규 LCC 2곳은 아직 이 단계까지는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항공업계 일각에선 자본금 요건이 과도해 재무적 부담이 따른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자본잠식 위기인 이스타항공의 경우 지난해 자본금은 심사요건 기준인 150억원을 훌쩍 넘는 486억원이었다. 500억원에 가까운 자본금으로도 경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자본금 요건을 더 낮춰달라는 주장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의견에 힘이 더 실린다. 엄격하다는 평을 받는 AOC 단계까지 항공사가 통과하더라도 애초 너무 낮은 자본 요건으로는 추후 재무건전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초체력 없는 사업자들도 국토부의 선심성 면허 발급에 항공사를 운영할 수 있게 됐지만 한편으론 자본시장의 차가운 시선을 감내해야만 한다.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경우 한계에 직면하는 기업들이 나올 것이고 결국 업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항공업계에선 최근 불거진 이스타항공 매각설을 ‘한계에 부딪힌 LCC 시장의 구조조정’ 혹은 ‘항공업계 재편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항공사는 운용리스로 운영해 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산 시 노선은 국토부가 다른 항공사들에 추후 배분해주기 때문에 노선 매력도로는 경쟁사가 사갈 요인이 없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시장의 문제는 그 어느 누구도 손해를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정부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항공산업의 사업자에게 필요한 최대한의 재무건전성 요건을 제시해야 하고, 사업자들은 정부에 지원만 바라지 말고 사업 가능성이 있다면 자금을 투입하든 손해를 감수하고 파산하든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힘들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신규 LCC 3곳 추가 진입으로 공급과잉이 더욱 심화될 내년엔 LCC 침체의 활로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