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 '구조조정’ 카드는 국민연금·KCGI 방패용?
입력 2019.12.02 07:00|수정 2019.12.03 09:06
    한진그룹 주총 D-3개월…조원태 회장 한진칼 사내이사 내년 만료
    대규모 구조조정 시사…주총 앞두고 투자자 공세 ‘원천 봉쇄’ 해석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고강도 구조조정 의지를 드러냈다. 그룹 핵심인 대한항공의 재무 부담이 가중되기도 했지만, 올해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외풍(外風)을 원천봉쇄하겠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마침 내년 3월은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들의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내년 주총은 조 회장이 그룹 경영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 할 수 있는지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일단 현 한진칼 대표이사인 조원태 회장이 내년 주총에서 사내이사직에 대한 재신임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올 초 치렀던 주주총회에선 국민연금 등의 반대로 고(故)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직 연임에 실패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조원태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여부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한진칼 사내이사 선임 요건(일반결의)이 대한항공(특별결의)에 비해 덜 까다로운 수준이긴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영권 분쟁 상황이기 때문에 내년 주총 결과를 예단하긴 쉽지 않다.

      이밖에도 내년 주총을 기점으로 대한항공 우기홍 대표이사(사장), ㈜한진의 서용원 대표이사(사장) 및 류경표 대표이사(부사장)등 주요 경영진과 한진칼ㆍ대한항공ㆍ㈜한진 3사의 사외이사 5명이 모두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다. 한진그룹은 지난 29일 주요 계열사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과, 류경표 ㈜한진 부사장을 승진 발령했다.

    • KCGI를 필두로 한 외부 주주들의 동조세력을 파악하긴 어렵다. 또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며 새롭게 주주로 등장한 반도그룹도 변수다. 조원태 회장 본인의 사내이사 연임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조 회장의 우호 세력들을 핵심 보직에 앉혀 안정적으로 경영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조원태 회장이 꺼낸 카드는 ‘고강도 구조조정’이다. 조 회장은 이례적으로 미국 맨하튼에서 기자들과 만나 “항공사업에 주력하되 이익이 안 나는 사업은 과감하게 버리겠다”고 언급했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대한항공의 재무부담은 상당하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사 중 유일하게 3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으나, 당기순이익은 적자전환했다. IFRS의 규정에 따라 환율상승에 영향을 받아 외화부채가 고스란히 평가손실로 기록됐다.

      대한항공의 부채 규모는 글로벌 항공사들과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현재의 부채비율은 약 920%인데, 금융투자업계에선 올 연말 이보다 20~30%p 이상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채비율이 꾸준히 상승하면 신규노선 배분 등 사업적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대한항공은 글로벌 항공사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 증권사 항공 담당 연구원은 “매출이 늘어도 영업비용이 함께 오르면 수익성은 제자리일 수밖에 없는데 대한항공은 지난해 공급 증가가 비교적 제한적이어서 매출이 올랐지만 비유류 영업비용도 함께 올랐다”며 “아직은 ANA 같은 글로벌 항공사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 대한항공이 밝힌 4년(2023년) 실적목표는 매출액 16조2000억원, 영업이익 1조7000억원이다. 이를 위해선 연평균 약 5%의 실적 성장세를 보여야 한다. 차입금은 2023년까지 3조7000억원가량 축소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송현동 부지 매각 등 각종 비핵심 자산 매각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목표가 달성된다면 외화차입금 축소에 따른 변동성 완화와 이자비용 감소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대규모 인건비 지출이 줄어든다면 수익성 개선 여지도 남아있고 재무건전성이 높아져 신용등급 상승도 노려볼 만하다. 다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 항공산업의 영업환경을 비춰볼 때 목표 달성 가능성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현재의 재무상태와 경영 상황이라면 KCGI의 주주제안을 비롯, 다양한 요구들이 주총을 전후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KCGI는 지난해 중순부터 한진그룹 지분율을 늘리며 높은 부채비율과 적자 사업 등을 지적해 왔다. 지배구조 개선, 비핵심 사업 정리 등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도 요구한 바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번 조원태 회장의 선제적 구조조정 발표는 외부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리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당장 구체적인 구조조정의 방향성은 제시되지 않았으나, 외부 투자자들의 요구를 수용해 실행에 옮기려는 의지를 나타냄으로써 추가적인 요구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대한항공은 외부 투자자 IR을 늘리고, 최근엔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제정해 이달 7일부터 시행하고 있을 정도로 외부 투자자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비핵심 자산, 비수익 사업 정리에 당장 나서긴 어려워보인다”라며 “조원태 회장이 구조조정 의지를 밝혔다는 의미보단 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경영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주총을 앞두고 우호적인 평판을 조성해 동조 세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