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협상 기한 코앞…손 놓은 산은, 금호 vs HDC 막판 줄다리기
입력 2019.12.02 07:00|수정 2019.12.03 09:06
    HDC 금호에 ‘내용증명’, 박찬구 회장엔 파트너 제안
    주도권 잡은 HDC “금호그룹 협상에 성실히 임해달라”
    12월 6일까지 계약서 합의, 12일 배타적협상기간 만료
    3자 배정 증자 근거 조항은 충분
    신주 발행 後 금호석화 지분 희석…증자 참여 가능성
    매각 앞장선 산업은행은 느긋…구주매각은 ‘관심 밖’
    •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을 위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하 금호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 컨소시엄의 협상 기한이 약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매각의 사실상 주체가 됐던 산업은행은 일단 한발 물러난 상태다. 협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HDC와 낮은 구주 가격에 만족할 수 없는 금호그룹의 줄다리기는 막판까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HDC는 아시아나항공 2대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과 접촉하며, 경영권 인수 전·후의 부담을 덜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HDC와 금호그룹의 계약서 조건 협상 기한은 12월6일까지다. 우협으로 선정된 HDC가 나머지 후보를 배제한 채 단독으로 협상을 할 수 있는 배타적협상 기간은 12월12일까지다. 양측은 HDC의 우협 지위가 만료되기 전 빠르게 협상을 마무리 짓고 연내 본계약(SPA)을 체결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이번 매각에선 우협 선정 이후 본실사 과정이 생략됐다. 통상적으로 인수자 윤곽이 드러난 뒤 1~2달에 걸쳐 세밀한 실사를 실시하는 통상적인 M&A 절차와 비교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이번 매각은 신주발행과 대주주의 구주매각이 병행하는 구조다. 인수대금 총 2조5000억원 가운데 신주발행 규모가 2조1000억원 규모로 압도적이다. 신주 발행 규모에 대한 가격 조정은 거래 상대방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고, 양측의 가격조정은 금호그룹의 구주 가격에 대해서만 소폭 조정될 수 있다.

      계약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HDC는 이번 주 금호그룹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내용증명 서두에는 금호그룹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취지의 내용을 언급했다. 또한 이제까지 양측의 협상 내용, 본계약 체결을 위한 기본내용(텀 시트; Term Sheet)도 포함됐다. HDC는 약 3200억원 규모의 구주가격을 높이지 않을 것이란 의견을 산업은행과 금호그룹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협상 과정에서 인수자 측이 매각 측에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사실상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본입찰에서 차순위를 기록한 애경그룹과 입찰 가격이 1조원가량이 차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협상이 무산돼 차순위 후보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할 때, HDC가 확실한 주도권을 확보했고 금호그룹이 수세에 몰린 상황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금호그룹 입장에선 경영권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주당 약 4600원에 해당하는 시가(약 5500원)와 액면가(5000원)에도 못 미치는 구주 가격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일 경우 추후 경영진의 배임에 대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한 금호그룹 계열사의 차입금 상환에도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기 때문에 구주가격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HDC 측이 금호그룹이 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금호그룹을 압박해 최대한 낮은 가격에 구주를 사들이고 본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우협선정 이후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11% 보유한 2대주주다. 정몽규 회장 입장에선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위해서 2대주주와의 원만한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인 금호산업과 수차례 대립각을 세운 전례가 있는 회사다.

      한 가족이 될 두 회장의 단순한 대면식 정도로 여길 수 있지만, 앞으로의 과정을 고려하면 양측의 복잡한 셈법이 있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HDC는 SPA 체결 이후 신주발행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중순 정관변경을 통해 발행 가능한 주식수를 최대한 늘려놓은 상태다. 또한 정관에는 [상법 제418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신기술의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주주 이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신주의 제 3자 배정에 대한 필요한 절차는 모두 마련돼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재 시가총액이 1조2000억원 수준인 점과 2조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고려하면, 향후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크게 떨어진다. 금호석화도 예외는 아니다. 지분율이 5% 미만으로 크게 떨어져 경영에 참여할만한 유의미한 지분이라고 보기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정몽규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 HDC의 증자 과정에서 금호석화의 참여 등이 거론됐을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몽규 회장 측이 증자 과정에서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한 방편으로 2대주주의 협조를 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며 “금호석화 또한 앞으로 아시아나항공 경영에 참여할 만한 명분이 사라지게 된 상황에서 자금 투입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초기에 참여를 검토하기도 했다. 지배구조개편,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리가 아직 명확하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수 이후, 아시아나항공을 활용한 그룹 지분 정리 시나리오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산업은행 측이 박세창 사장을 통해 금호석화의 인수전 참여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인수전 참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거래 당사자들의 물밑 협상이 치열하게 펼치는 와중에, 이번 매각의 전권(全權)을 쥐었던 산업은행은 느긋하다. 구주의 매각 금액은 산업은행이 크게 관심을 갖는 사안이 아니라는 평가다. 일단 연내 매각은 가시권에 들어왔고, 신주의 비율을 극대화 한 상황에서 올해 중순 빌려줬던 차입금도 무난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