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승계 작업 도맡아야 하는 '역할론' 부상
사촌 허연수 함께 승진해 3세들 힘 실려
'4세' 중 허윤홍 사장만 승진하며 기반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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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그룹이 15년만에 새 회장을 맞이했다. 선택은 후보군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이었다. 갑작스러운 회장 선임을 의식한 듯 그룹에서는 ‘디지털 혁신 전도사’, ‘GS홈쇼핑 성공신화’, ‘일찌감치 후계자 낙점’ 등의 수식어를 쏟아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인사를 두고 "아직까지 이르다"는 평가를 받는 ‘4세 승계론’을 잠재우며 계열 분할 가능성에 대한 ‘시간 벌이’에 나섰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GS그룹은 3일 사장단 회의에서 허창수 GS 회장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고 밝혔다. 당초 허창수 회장의 임기는 2022년 3월까지로, 2년 이상 남은 상황이었다. 그룹 측은 “(허 회장이)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용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룹의 절박함을 차치하더라도 ‘허태수 카드’는 예상 밖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당초 GS그룹의 차기 총수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룹 차원에서 경영능력을 계속 부각했던 3세 주요 보직자 중 나이가 가장 젊은 허용수(52) GS에너지 대표이사 등이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보수적 접근’과 4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허세홍(51) GS칼텍스 사장 등을 내세워 단번에 세대 교체를 할 수 있다는 ‘급진적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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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허태수 회장 선임은 주목도는 떨어지지만 나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정적인 선택지를 마련한 셈이 됐다. 다만 구씨 일가와 함께 LG그룹을 경영하던 시절에도 지켰던 ‘70세 룰(70대에 회장직에서 물러난다)’을 감안하면 63세의 허태수 회장은 장기간 재임을 장담하기 어렵다. 이번 인사에서 바로 손 위 형인 4남 허명수 GS건설 부회장까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룹의 전반적인 분할과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목할 점은 3세 승계가 그저 ‘시간 벌이’에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GS인사 승계의 면면을 뜯어보면 또 다른 승진자인 3세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이 눈에 띈다. 그룹은 이번 인사를 ‘철저한 성과주의’로 표현했지만, 실상 GS리테일의 분기별 실적 추이는 쪼그라든 유통 업황 때문에 3년째 큰 등락 폭을 보이고 있다. 실적과는 별개로 이미 회장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함께 허 부회장의 부상으로 그룹 경영권의 무게추가 3세로 좀 더 옮겨졌다는 평가다.
허창수 회장의 아들 허윤홍 GS건설 사장은 이번 인사에서 4세 중 유일한 승진자다. 지난해 신사업 추진실장 부사장으로 승진한지 1년 만이다. 아버지 허창수 회장의 지분이 3분기 기준 9.27%으로 독보적으로 많은 GS건설에서 입지를 한 단계 더 굳히게 됐다. GS건설은 최근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신사업 창출 프로젝트 일환인 ‘GS그룹 펀드’에도 홀로 참여하지 않는 등 별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허윤홍 신임 사장의 승진은 그룹 전체로 봐도 상당히 빠른 속도”라며 “GS건설 내 입지를 확보해 차후 계열분리를 시도하거나, 다음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도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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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04일 16:2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