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銀에 기관제재 대신 'MOU'…금감원 책임 회피용?
입력 2019.12.09 07:00|수정 2019.12.10 10:39
    해외 분할송금 관련 '제재 갈음 MOU' 첫 체결…목적은
    다건이체 급증에 규제 강화…'수수료 0원' 씨티銀 '불똥'
    자율 개선 독려했지만…은행 "가이드라인 없어 난감"
    • 비대면 해외분할송금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은행 5곳에 대해 기관제재 대신 'MOU(양해각서) 체결'과 '확약서 제출'이라는 다소 묘한 처분이 이뤄졌다. 제재를 MOU 체결로 갈음한 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처음에는 상황을 방치하다, 송금수수료 하락으로 해외 분할송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그제서야 제재는 가하되 그 수준을 낮추는 '책임회피용'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치를 취한 이후에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주어지지 않아 개선에 자율성을 부여받은 은행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2일 '외국환 거래 취급 시 일부 고객의 소액분할 송금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외국환업무 담당자가 지켜야 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국내 은행 5곳에 대해 기관제재 대신 MOU 체결과 확약서 제출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MOU를 체결한 곳은 외국계은행인 한국씨티은행이다. 확약서 제출로 제재를 대신한 은행은 카카오뱅크와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4곳이다. 법규 위반 정도로 보면 MOU와 확약서는 각각 기관경고, 기관주의에 해당한다.

    • 두 제재 방식 모두 기존의 기관제재보다는 부담이 적다는 지적이다. 금융회사가 기관경고를 받을 경우 일정기간 타 금융회사의 대주주 결격 사유가 발생해 자회사 인수가 어려워지고 국내외 신사업·해외진출도 향후 1년간 막힌다. 3년 이내 기관경고 3번 이상을 받을 경우에는 영업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

      금감원은 업계 전반적으로 3000달러 이하 송금에 대한 확인의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기관경고 대신 MOU 체결 및 확약서 제출 방식을 택했다는 입장이다. MOU 관련 대상요건은 ▲ 행위 당시 위법·부당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업계 전반에서 오랜 관행이 형성되어 위법·부당 여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 위법·부당행위의 고의·중과실이 없고 그 결과도 비교적 경미하며 효과 면에서도 일회성 제재보다는 자율개선이 바람직한 경우 등이다. 이번 건은 첫번째에 해당한다.

      그러나 업계 인식이 부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분할송금 모니터링을 당부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외환 분할송금 관련 가이드라인이 기재된 공문을 송부했다. 하나은행은 그 직후 5만달러 이상의 송금은 영업점을 통해서만 송금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변경하며 이번 제재를 피했다. 우리은행 등 확약서 처분을 받은 4곳의 은행도 일부 시정조치를 취해서 MOU 대신 확약서 제출로 갈음이 됐다는 분석이다.

      씨티은행의 경우엔 더욱 인식이 부족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씨티은행은 이미 내년까지 고객의 80% 이상을 디지털 채널 이용자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는 등 비대면 서비스를 늘리려 했기 때문이다. 현물 외국환 거래의 경우 영업창구에서 관리가 가능하지만, 비대면의 경우 건별로 관리가 쉽지 않아 제도적 기반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외국계 은행이 외국환거래 기준은 엄격하게 마련하는 편"이라며 "씨티은행의 경우에도 외국환거래 관리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분할송금에 대해 손을 놓고 있던 금감원이 해외 송금수수료가 저렴해짐에 따라 급하게 개선에 나선 게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나온다. 애초부터 금감원은 분할송금에 대해 건수나 총액 등 구체적인 제재 기준을 은행에게 제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해외 송금 수수료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발생했다. 최근까지 카카오뱅크는 해외송금 수수료를 5000원까지 낮추었고 씨티은행은 비대면 해외송금 수수료 0원 서비스를 내놓았다. 수수료가 저렴해지자 해외 분할송금 건수가 늘어났다.

      금감원이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할 필요성이 생긴 셈이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수수료가 비쌌을 때 금융당국은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의도적으로 해외 분할송금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소액 송금에 대해서는 풀어놓고 있었다"며 "그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최근 여러 건으로 나누어 소액 이체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제재 필요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송금 수수료 0원'을 내세우던 씨티은행이 확약서가 아닌 MOU를 체결한 이유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씨티은행은 2017년 8월부터 송금수수료, 전신료, 중개은행 수수료, 수취은행 수수료가 전혀 들지 않는 '글로벌 계좌이체' 비대면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모아왔다. 업계에 따르면 씨티은행의 해외 분할송금 규정에 대한 위반 규모는 타 은행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시장에선 관련 은행들이 해외 송금거래 기준 마련에 어려움을 계속 겪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들이 이번 제재로 자율성을 부여받았지만 건수나 액수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은행들을 탓하기만은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도리어 금감원이 제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혹평이 오갈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경직되게 조치하기보단 은행이 자율적으로 규정을 지키라고 유도하기 위해 MOU를 도입한 것"이라며 "은행업권은 규제가 엄격하다보니 피해가 있고, 제재가 능사는 아니므로 (MOU) 제도를 도입해 조치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외환 송금 기준은 기획재정부 소관이며 금감원은 필요하면 제재하는 역할"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