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일방통행 구조조정…“딴죽 걸지 말라”
입력 2019.12.18 07:00|수정 2019.12.19 10:03
    아시아나항공 등 처음부터 잡음
    대우건설·KDB생명 매각도 불투명
    철저한 준비 없이 일방통행 진행
    산업銀 "마무리 단계" 자평하기도
    • 산업은행은 올해도 구조조정 업무에 분주했다. 어떻게든 구조조정의 그림자를 끊어내겠다는 의지는 강렬했으나 실행 과정은 매끄럽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도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고, 시장 상황을 도외시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논란이 일어도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레 산업은행의 행보에 우려가 이어졌다. 구조조정 의지에 비해 고민이 부족하다 보니 대상 기업의 미래도 불확실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시장의 불신을 탓했고, 가던 길을 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끊어내기와 대상 기업의 불안감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시작부터 묘한 구도였다. 원치 않는 매각자를 산업은행이 등 떠밀었는데 자금 논리만 있을 뿐 법적 근거는 모호했다. 산업은행은 매각에 깊이 관여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매각 주체가 아니라며 뒤로 물러섰다. 시장의 궁금증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도 거래 관계자들엔 강한 함구령을 내렸다.

      상장사 매각은 구주든 신주든 가격 산정이 최우선 요소였지만 그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았다. 처음부터 제3자배정 방식으로 못 박은 탓에 운신의 폭도 좁았다. 매각 초기 산업은행 핵심 관계자에 “구주를 매각한 후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전례가 있었느냐”며 일축하기도 했다.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미흡했다. 금호타이어 매각이 상표권 문제로 무산됐던 전례가 있었음에도 매각자의 구주 가격 인상 요구를 적절히 제어하지 못했다. 주가가 등락을 반복하는 사이 거래는 성사와 무산을 수 차례 오갔다.

      대우조선해양 M&A는 현대중공업만 보고 진행됐다. 요식 행위로 다른 대기업은 제외하고 삼성중공업에만 의향을 물었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 거래 관계자 사이에선 현대중공업의 ‘경쟁자 제거 의지’가 거래의 핵심 동력 중 하나란 평가가 있었다. 특혜가 아니라는 산업은행의 항변이 공감을 얻기 어려웠다.

      계약 이후엔 성사 불확실성에 노출됐다. 세계 1~2위 조선사를 합치는데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는 불투명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50% 이상’ 발언이 화제가 됐다. 유럽연합(EU)과 사전심사 절차가 시작된 후에야 국내 증권사를 대상으로 M&A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승인이 나더라도 선결 조건에 따라 ‘조선 경쟁력 제고’라는 명분을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다.

      산업은행은 민영화에 의의를 두지만, 20년간 민간이 원할 기업을 만들지 못했다는 점엔 입을 닫았다. 현대중공업 경영진들은 대우조선해양 임원들에 ‘너무 온순하다’는 평가를 내린다고 한다. ‘국영 조선사’라 굳이 야성을 키우지 않아도 먹고 살만 했다. 그 토대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마련해줬다. 외려 지금까지 기술력을 지켜온 것이 용하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 KDB생명보험 매각은 산업은행 최대의 난제로 꼽힌다. 회사의 사정은 빠르게 개선됐지만 매력적인 매물로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핵심은 앞으로 자본확충에 들어갈 돈인데, 산업은행은 투자금을 고려한다. 산업은행이 바라는 ‘훌륭한 가격’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알리안츠생명 매각가는 주관사 수수료 선에서 결정됐다.

      과거 KDB생명 M&A에 관여했던 자문사 관계자는 “회사가 좋아지고 있다지만 금융지주사나 대형 사모펀드(PEF)들이 매력을 느낄 요소는 많지 않다”며 “시장 가격과 받고 싶은 가격 간 격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거래 성사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매각은 2017년 시작돼 우선협상대상자까지 선정했으나 무산됐다. 이동걸 회장은 대우건설을 몇 년간 재정비해 값을 올려 팔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해 KDB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대우건설을 넘겼다. 산업 비전문가인 산업은행을 대신해 시장 주도 구조조정을 해나간다는 취지다. 다른 구조조정 기업 자산도 이전을 예고했다.

      KDB인베스트먼트는 대우건설을 주당 6450원에 샀지만 최근 주가는 5000원을 밑돈다. 목표로 한 민간 운용사(GP)와의 협업, 민간 출자자(LP) 모집 모두 수익성이 받쳐줘야 하는데 어지간한 주가로는 어렵다. 원하는 전문가들을 영입하려면 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부담은 다시 산업은행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향후 기업가치와 주가가 오르고 유력한 원매자까지 나타나도 성사를 낙관하기 어렵다. KDB인베스트먼트 역시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의식 구조를 가장 큰 문제로 봤다. 인사 평가와 보상 시스템 개선이 얼마나 효율적일지는 미지수다. 회수가 늦어지면 수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의 ‘선제적 구조조정’ 1호 기업 화승은 올해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미리 자금을 투입해 기업을 키우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이었지만, 업황 악화와 관리 부실 여파는 피하지 못했다. 한진중공업은 알짜라던 필리핀 수빅조선소 부실 여파로 자본 잠식에 빠졌고, 결국 채권단 체제로 들어왔다. 현대상선은 여전히 ‘천수답’ 상황을 벗지 못하고 있다. 자금 공백이 있을 때마다 산업은행이 자금을 넣어주고 있다. 장기 자금 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다음 충격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올해 산업은행의 구조조정은 ‘일단 진행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했다. 시장 상황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루거나, 시작한 후 원매자가 나타나주길 바라는 경우도 있었다. 명분은 일이 벌어진 후 견강부회 식으로 끌어오기도 했다. 구조조정 기업이 산업은행을 떠난 후 벌어지는 문제는 큰 고민거리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왔다.

      산업은행은 구조조정 전문가로서의 치밀함이 부족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구조조정 문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며,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었다고 보고 있다.

      시장에 대한 불만도 빼놓지 않았다. 이동걸 회장은 산업은행이 하는 일에 대해 불신의 늪이 깊고, 뒷다리만 잡으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동안 구조조정 기업을 끌어안아 발생한 손실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정리 과정에서의 작은 실패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이동걸 회장은 현 정권의 최상층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소신도 강하지만 그 소신이 언제나 선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시장의 불신은 산업은행이 어느 정도는 자초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